진짜를 향한 집착, 가짜를 향한 이해

by yuri

몇 달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라는 작품이 꾸준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화제성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깊이에 빠져들게 되었다.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를 뜻한다. 이 단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자, 독자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진짜란 무엇이고, 가짜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경계는 과연 존재하는가?


작품 속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는 김곤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작품을 사랑했고, 그가 가진 예술적 감각과 철학에 깊이 공감해왔다. 그래서 그에 대한 비난이 들려올 때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외면하며 무조건적으로 옹호했다. 그러나 시사회장에서 그가 자신의 잘못을 직접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허무함을 느꼈다.

이후 신혼여행지에서 이빨과 손톱이 모두 제거된 호랑이를 쓰다듬으며 인증샷을 찍는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진짜 호랑이일까?” 외형은 분명 호랑이지만, 본질은 이미 사라진 존재. 위험하지도 않고, 야성도 제거된 그 호랑이는 호랑이의 껍데기만을 간직한 채, 관광객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곤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의 모든 면을 보려 하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면만을 골라내어 환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환상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거부했다. 결국 내가 사랑했던 것은 김곤 감독이라는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였다. 즉 주인공이 만든 ‘진짜 같은 가짜’였던 것이다.


SNS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마찮가지다. 우리는 SNS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 속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그에 비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한다. 하지만 그 콘텐츠들이 과연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담고 있을까? 영화나 소설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을 때도, 모든 면을 담지 않고 편집된 일부만을 보여준다. SNS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편집된 나’일 뿐, 진정한 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진짜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짜 같은 가짜를 기준 삼아, 자신을 평가하고 자책한다.


요즘 핫플레이스를 찾는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만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들이 가니까, 좋다고 하니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진짜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기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우리는 진짜 같은 가짜를 보며, 그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에 비해 부족한 자신을 한심하게 여긴다.


작품의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가짜 박수무당과 진짜 애기 무당 사이의 대결이 펼쳐진다. 애기 무당은 타고난 능력을 지닌 진짜 무당이고, 박수무당은 그저 흉내내는 가짜일 뿐이다. 그러나 박수무당은 애기 무당을 이기기 위해, 자신 역시 진짜로 인정받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굿을 벌인다. 결국 진짜인 애기 무당이 쓰러지고, 가짜인 박수무당만이 굿을 이어가는 모습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다시금 흔들어 놓는다.


이 장면을 통해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존재 의미를 찾고 그것을 꾸준히 고수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가짜도 진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진짜와 가짜라는 이분법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믿고 있는 ‘진짜’는 정말 진짜인가? 아니면 당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을 골라낸, 진짜 같은 가짜인가? 그리고 당신은 진짜가 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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