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신이 던진 질문일 뿐

by yuri

tvN 드라마 <도깨비> 12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 뿐, 운명은 내가 던진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니 불연듯 생각난 문장이다. 프랭클은 인간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의미야말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흔히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프랭클은 말한다. “삶의 의미를 잃을 때 인간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나치 수용소라는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청소년들마저 우울증을 호소하는 나라.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줄을 세운다. 공부든 외모든, 운동이든 예술이든. 미국이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면, 한국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어야만 해”라고 강요한다. 대단하지 않으면 가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는다.


연예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은 무대 조명이 꺼진 뒤라고 한다. 조명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빛났지만, 무대에서 내려와 불 꺼진 방에 홀로 있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높은 꿈을 꾸라고 말하는 어른들, 그 말은 때로는 독이 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크게 다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면, 그 괴리를 좁히지 못한 채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목표는 높지만, 내 삶은 시궁창 같으니까.


프랭클은 말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그 자유란 바로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다. 수용소 안에서도 그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비상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상과 실제가 거의 일치한다. 학생들은 “100점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묻지만, 극상위권 학생들은 “한 80점 정도 나올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실제로 그 근처 점수를 받는다. 중요한 것은 높은 목표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해가는 것이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작은 성취도, 조용한 기쁨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지탱하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 너무 높이만 보지 말고, 지금 내 발밑에 있는 의미부터 찾아보자. 그것이 결국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 될 테니까.


삶은 신이 던진 질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신에게 질문하지 말고, 신이 던진 삶의 의미에 대한 내 대답을 찾아야 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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