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태블릿 죄책감 탈출기
오랜만에 어머님과 단둘이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무심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던진 어머님의 한마디가 공중에 흩어졌습니다.
"식당 같은 데서 애들 태블릿 보여주는 부모들을 보면 좀 그렇더라. 애 인지 발달에 안 좋다는데…."
그 순간 제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저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어린아이일수록 미디어 노출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식당은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이고, 아이 손에 태블릿을 쥐여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거나 식당 안을 뛰어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아이 케어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무언의 손가락질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건 결국 엄마입니다.
"처음부터 노출을 안 시키면 되잖아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8시간 넘는 노동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잠시라도 숨을 돌리기 위해, 혹은 쌓인 집안일을 해치우기 위해 부모는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아이 손에 화면을 건넵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하루를 버텨낼 유일한 숨구멍이라는 사실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기 어렵습니다.
학부모 상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오늘 OO이가 놀이 시간에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눌러주세요'라고 말하던데 미디어을 너무 많이 보여주시는 것 아니세요? 하루 30분 정도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라는 조언을 들으면, 한두 시간은 족히 보여줬던 어제 일상이 떠올라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마치 내가 편하자고 아이를 방치하는 나쁜 부모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도,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이 있을까요?
저는 미디어 노출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관리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부모의 강력한 통제로 스마트폰이 꽉 막힌 아이들을 봅니다. 수업 시간에 꼭 필요한 사이트조차 접속하지 못해 친구의 화면을 멍하니 지켜보는 아이,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는 게임을 모르면 또래들 간의 대화에 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과도한 통제로 또래 남학생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통제가 심할수록 아이들은 기가 막힌 방법으로 감시망을 피해갑니다. 규제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죠.
교육 관련 유튜브를 보니 아이에게 유튜브 키즈를 가장 마지막에 노출시키라고 하시던데, 저희는 슬프게도 유튜브 키즈를 가장 먼저 노출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저의 선택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아이가 유튜브에서 주로 보는 영상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아이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더라고요.
저희 아이는 소꿉놀이와 그림 그리는 영상을 주로 보는데, 어린이집에서도 그 두 가지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아이가 밖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지 대략 유추가 되는 셈입니다.
제가 영상 시청 시간에 엄격한 제한을 두지 않는 이유는, 아이 스스로 멈추는 법을 배우길 바라서입니다.
"영상 많이 보면 생각 주머니가 작아진대. 우리 영상은 그만볼까?"라고 말하면 아이는 "이거 하나만 더요!"라고 협상을 시도합니다. "영상을 계속 보면 눈이 빨개지는데, 아까 지니가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지?"라고 말하면 아이는 이내 스스로 화면을 끄고 장난감을 찾아갑니다. 잠시 혼자 놀다 돌아온 아이가 "이제 봐도 돼요?"라고 물으면, 상황을 봐서 잠깐 더 보여줬다가 집안일을 어느 정도 끝낸 뒤 "이제 엄마랑 같이 책 읽을까?"라고 다시 제안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네"라고 대답하며 태블릿을 스스로 끄고 제게 오고,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아이에게 폭풍 칭찬을 건넵니다.
"와, 스스로 태블릿을 끌 수도 있고! 우리 OO이 정말 대단한데."
아이는 그 칭찬이 좋아서 내일 또 그 행동을 스스로 반복합니다. 강요된 시간 제한보다 아이 스스로 성취해낸 '절제'가 아이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미디어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훌륭한 '대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가 보는 영상을 거의 같이 보는 편이라, 등하원 길에 나눌 이야기가 풍성합니다. "아까 그 캐릭터는 왜 그랬을까?"라고 물으면 아이는 신나서 재잘거립니다. 대화의 소재가 떨어질 때쯤 미디어를 통해 본 내용은 부모와 아이를 다시 이어주는 좋은 끈이 됩니다.
미국은 새로운 산업을 키울 때 일단 자유를 주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 규제를 고민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수많은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지요. 하지만 한국은 규제부터 생각합니다. 저는 미디어 시청과 관련해서도 무조건적인 통제와 규제 속에 아이를 가두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몇 분을 보여줬느냐'가 아닙니다. 아이가 자신의 관심사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정해진 상황에 맞춰 스스로 화면을 끌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자라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오늘 태블릿을 쥐여주며 마음 무거웠을 모든 부모님들, 이제 그 미안함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