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 선언을 취소합니다, 가벼운 엉덩이로

by yuri

학기 초, 교무실 제 책상 위에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정성스레 써 내려간 자기소개서가 수북이 쌓입니다. 가만히 읽다 보면 유독 약속이라도 한 듯 반복되는 문장이 눈에 밟힙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높은 몰입도를 보이지만, 목표가 없으면 방황하곤 합니다.”

이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장점이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나만의 고유한 빛깔이어야 하는데, 사실 목표가 생기면 달리고 싶어지는 건 우리 모두의 본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노는 것도 시큰둥한 아이와 상담을 할때 돌아오는 답은 늘 비슷합니다. "선생님,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목표만 생기면 진짜 잘할 텐데…."

경주마가 눈 옆을 가리고 뛰는 이유는 시야가 분산되면 골인 지점을 향해 돌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골인 지점이 보이지 않을 때 멈춰 서서 "길이 보이면 뛸게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내세우는 가장 달콤한 변명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저 또한 걱정과 불안이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혹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불안은 그림자처럼 저를 붙듭니다. 저 역시 "확실한 목표만 있으면 나도 진짜 잘할 수 있는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원래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기에 미래입니다. 불확실한 앞날에서 목표를 찾지 못해 서성이고 있다면, 이제 시선을 '미래'가 아닌 '현재'로 옮겨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Goal)'가 아니라,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Action)'를 질문해야 합니다.


저 역시 저의 장점이 무엇인지 오랜 시간 헤맸습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저의 장점으로 '가벼운 엉덩이'를 꼽고 싶습니다. 추진력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실행력 하나는 끝내줍니다. 오죽하면 동료 선생님들이 "선생님은 참 엉덩이가 가벼워요. '공지사항 있습니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정신 차려보면 벌써 자리가 비어 있더라고요. 반을 너무 사랑해."라며 웃으실 정도니까요.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일단 저지르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실패도 많이하고, 슬럼프와 번아웃도 곱절로 겪습니다. "나는 왜 이토록 잘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자책하며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수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었던 힘, 즉 '일단 움직이는 실행력' 자체가 저의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남들의 성공에 진심으로 감탄할 줄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실패에는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표가 없어서 방황하고 있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창한 목표를 기다리며 멈춰 서 있기보다, 오늘도 가벼운 엉덩이를 들썩이며 일단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 그것이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는 가장 용기 있는 자세라고 믿습니다.


자, 이제 저는 이 '가벼운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시 펜을 잡으려 합니다. 매일 "나 더 이상 글 안 써! 작가는 무슨, 이거 다 시간 낭비야!"라고 외치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던 '절필 선언'은 오늘부로 가볍게 취소하겠습니다. 목표는 아직 멀리 있을지 몰라도, 일단 다시 써보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실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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