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의 이어폰에서 ‘빅뱅’이 흘러나올 때

어느 음악 교사의 ‘플레이리스트’ 관찰기

by yuri

사람의 취향은 그 사람의 영혼이 몰래 내미는 명함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이라도 그가 즐겨 듣는 음악만 알면, 그가 어떤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사는지, 혹은 밤마다 어떤 온도의 외로움을 식히고 있는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존재 자체가 모순 덩어리다. 나는 날 선 일렉 기타 사운드가 고막을 때릴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킥 드럼의 묵직한 비트가 가슴팍을 사정없이 쳐줘야 비로소 '아, 나 살아있구나'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내 MBTI는? 낯가림에 절어 있는 전형적인 '대문자 I(내향형)'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사실 엄청 소심해"라고 수줍게 커밍아웃하면,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에이, 뻥치지 마세요! 선생님 완전 파워 E(외향형) 같으신데!"

억울하다. 내 안의 소심이를 잠재우기 위해 비트를 좀 세게 틀었을 뿐인데, 남들 눈엔 그게 '넘치는 생기'로 번역되는 모양이다. 음악은 때로 본연의 나를 투명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처럼 내가 되고 싶은 '가면'을 대신 써주기도 한다.


이런 호기심 섞인 의심에서 시작된 수업이 바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수행평가다. "너희 인생을 대변하는 5곡만 뽑아와 봐. 그게 곧 너희의 정체성이야!"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수업의 문을 열었다.

내심 머릿속엔 이미 뻔한 시나리오가 다 써져 있었다. '요즘 애들이니 뻔하지. 에스파나 블랙핑크처럼 "나 쩔지?" 하는 쎈 언니들의 음악이 교실을 도배하겠지.' 하지만 웬걸, 고3 아이들이 내민 결과지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들의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건 화려한 퍼포먼스 곡이 아니었다. 한 편의 시 같은 팝송, 혹은 인생의 고뇌를 담은 철학적인 J-pop들이 대세였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반가워서!) 뒷목 잡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4세대 아이돌의 화려한 세계관 대신, 내가 학창 시절 미친 듯이 따라 불렀던 2세대, 3세대 아이돌의 이름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선생님, 저 사실 빅뱅이랑 워너원 좋아해요."


그 순간, 묘한 전율이 일었다. 3세대 음악까지만 해도 우리는 다 같이 목이 터져라 '떼창'을 부르며 "우리는 하나!"를 외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K-pop은 신입생은 입학조차 힘든 명문대처럼 거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서사'라는 성벽을 높게 쌓기 시작했다. 광야로 가야 하고, 기억을 잃어야 하고, 이름 모를 뱀이랑 싸워야 한다. 팬덤이 아니면 진입조차 어려운 이 화려한 감옥 안에서, 어쩌면 아이들도 나처럼 피로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공부하기 싫어 죽겠는 고3에게 필요한 건 귀를 찌르는 '매운맛' 비트가 아니었다. 그냥 카페 구석에서 들릴 법한 잔잔한 음색,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이었다. K-pop이 세계 정복을 위해 고지전(高地戰)을 벌이는 동안, 아이들의 연약한 위로는 오히려 과거의 담백한 선율 속으로 피신해 있었다.


문득 내 학창 시절의 '연예대상' 풍경이 겹쳐 보였다. 그때는 가수와 배우, 개그맨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막춤을 추고 다 같이 떼창을 하는 게 국룰이었다. 그 투박하지만 뜨거웠던 연대감. 체육 수행평가로 온 반이 달라붙어 '꼭짓점 댄스'를 추던 그 촌스럽고도 즐거웠던 기억들.

물론 요즘 교실에도 희망의 빛은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남학생이 여장을 하거나 걸그룹 춤을 추면 난리가 났겠지만, 요즘 애들은 다르다. 축제 무대에서 남학생들이 아이브의 'Love Dive'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당당하게 무대 위에서 여장을 즐긴다. 걸그룹 노래 하나로 남녀가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 매니악해지는 보이그룹 음악보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걸그룹 노래가 이 시대의 새로운 떼창이구나!'


수업을 마치고 텅 빈 음악실에 앉아 아이들이 적어낸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찬찬히 훑어본다. 10년 전 노래를 듣는 열아홉 학생과, 그 노래를 노래방에서 악쓰며 부르던 삼십 대 선생. 우리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음악은 그렇게 세대의 벽을 발로 뻥 차버리고, 서로의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게 만든다.


퇴근길엔 아이들이 추천해 준 그 '가사 예쁜 팝송'을 틀어봐야겠다. 그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 하루 아이들이 문제집 귀퉁이에 몰래 적어두었을 조그만 고민 한 조각쯤은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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