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임용고시에 통과하기 전까지 강사 생활을 했으니 4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관공서 등을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했습니다.
'대학교 생활 내내 1등을 하면 학교에서 나 하나쯤은 책임져 주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조기 졸업을 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학교 전화를 기다리며 강사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초등학교에서 음악 시간제 강사를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와 면접을 통과해 수업을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곳이니 열심히 하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한분이 들어오시더니 "선생님 수업 끝나고음악실 청소하고 가세요"라고 말하고 돌아가셨습니다.아이들이 저를 보며 "저희 반 선생님은 청소 안 하는데왜 선생님은 청소해요?"라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교사가 아니라 강사여서 나는 청소를 하고 가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쉬는 시간에 따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수업시간에 갑자기 들어오셔서 애들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게 기분 나빴던 것 같습니다.
리코더 수업 차 한 초등학교에 방문을 했는데 제가 수업을 들어가는 반 담임 선생님께서 "선생님 오늘 어떤 수업을 하실 건지 저한테 미리 확인받고 들어가세요"라고 말해서"선생님 저는 선생님 수업을 대신하러 온 게 아니고 리코더 수업을 위해 따로 고용된 강사인데 수업 내용을 선생님께 다 확인받아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선생님 리코더 수업할 때 합창 악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세요? 아니 음악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리코더 악보랑 합창 악보도 구별을 못해서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합창 악보라고 해서 무조건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에요. 악기로도 연주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니 "아무튼 이제부터는 저한테 수업 전에 미리 검토받고 가세요"라고 말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교사가 아니라 강사라서 수업 내용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강사 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제 뒤에서 "봐봐, 사범대 나오면 저렇게 된다니까. 임용고시 통과를 못하니까 강사생활 밖에 못하지"라고 쑥덕대는 말이였습니다.
한 번은 몇 년 전에 수업했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와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1시간 넘게 기다려서 겨우 면접을 볼 수 있게 됐는데 면접관 중 한 분이"선생님 저희 학교에서 수업을 하셨던데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 이름 다 기억하세요?"라고 물으셔서 "시간이 좀 지나서 다는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라고 답했더니 "선생님으로서 자질이 없으시군요"라고 말하면서 "선생님은 음악교육과를 나왔는데 왜 기타를 가르치세요? 기타 전공이 아닌데 어떻게 아이들한테 기타를 가르칠 수 있죠? 음악교육과를 나왔다고 해서 이 악기 저 악기 다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시더군요.'임용고시에 통과해서 음악 교사가 되지 못하면 내 전공은 쓸모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방황을 그만두고 임용고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시험이란 건 실력이 좋다고 무조건 붙는 게 아니라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누구는 지역 선택을 잘해서 최저 점수로 문 닫고 합격하고, 누구는 지역 선택을 잘못해서 같은 점수로 탈락합니다.
강사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기간제 교사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기간제 교사를 모집하는 공고에는 매번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내정자가 있는데 들러리가 필요한 상황이라 면접장에 경력 없는 저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 인생은 온통 苦(고) 뿐이냐고… 신이 있으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라고원망도 했습니다.
정규직만 되면 이런 일 안 당하고 살아도 된다. '언제 잘릴지…'. '내년에도 내가 일할 곳이 있을까?'라는 걱정이 사라진다고해서 정규직만 되면 제 인생이 필 줄 알았습니다. 더 이상 무시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처음 발령을 받아 간 학교는 음악 교사 정원이 2명인데 두 분이 동시에 나가는 바람에 한 명은 신규 발령, 한 명은기간제 교사로 채웠졌습니다.
저와 1년을 함께 할기간제 선생님께서는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학 전 전교사 출근일에학교를 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간제 교사 경력도 없고 신규라서 수업 시수를 어떻게 짜야 될지 몰라 짐 정리를 하러 온 전임자 음악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수업 시수를 공평하게 반반으로 나눴습니다.
같이 일할 선생님과 상의해서 수업시수를 결정해야 하나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닿지 않고,교무부에서는 수업 시수표를 내야 시간표를 짤 수 있다고 퇴근 전까지 제출하라는 상황이였습니다.
나름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정교사라도 기간제 선생님한테 갑질하면 안 돼요. 신규라서 몰라서 그럴 수 있는데 한 사람한테 시수를 몰아주면 어떻게 해요"라고 혼내시더군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씀드렸지만언짢아만하시고 끈으셨습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수업 시간이 5분 더 길기 때문에 평균 수업 시수만 보면 중학교가 고등학교 보다 많은 편입니다.
저랑 같이 근무하기로 하신 기간제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에서만 근무를 하다 중학교로 처음으로 왔고중학교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제가 수업하기 싫어서수업을 시수를 몰아놓아 준 것으로 착각하신 것 같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잘못을 하면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라고 배웠는데 그 어느 누구도 저에게 "오해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안 해주시더군요….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 신규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 "요즘은 다들 기간제 교사를 하고 온다는데 기간제도 안 하고 왔어요?", "어디까지 알려줘야 해요" 등의 말을 들으면서 신규 시절을 보냈습니다. 눈치보기 바빴고 "무능해서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선도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학부모님께서 계속 물으셔서회의를 통해 처분 결과가 이미 확정됐고 담당 선생님이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라는 통지서만 집으로 보내면되는 상황이라 고민하다조심스럽게 "아마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요?"라고 학부모님께 말을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거야. 누굴 죽일려고"라고 화를 내는 선생님에게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책임은 아무나 지는 줄 알아.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설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말을들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울기만 했습니다.
사람은 본인이 경험한 만큼만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한정된 경험만 하게 됩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 독서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합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하는데 주위에서는 혼내기만 하니 그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도망칠 생각만 했습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면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학생, 학부모, 강사가 학교나 기관에 민원을 넣으면 저는 이를 방어할 근거를 1장, 10장, 100장짜리 문서로 만들어서 제출해야 했습니다.
정규직이 되면 좋을 것 같았는데 그만큼 책임도 커지더군요.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저는 교사를 그만두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법원에 다니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교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이 일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정김경숙. 위즈덤하우스. 2024)는 구글 임원에서 이메일 한통으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N잡러 생활을 하는 글쓴이의 경험담을 담은 책입니다.
신규시절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갈 곳이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만화를 보면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 속에 숨어있으면서 주인공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난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때 주인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귀를 막고 쭈그려 앉아있구요. 그게 당시 저의 심리상태였습니다.
한 번은 횡단보도를 지나가는데 트럭이 빵빵거리며 저에게 다가오더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피해야 된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냥 차가 오는구나'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다행히'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피하기는 했습니다. '살았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트럭 운전기사 분께서저에게 욕을 하면서 지나가셨습니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경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실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경험으로 배운건 실전에 금방 적용이 되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은 귀차니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민원에 크게 시달려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상담 일지를 기록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선생님들은 상담 일지를 잘 쓰지 않으십니다.그럴 시간도 여력도 부족하기 때문이죠.
사실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일이 잘못되려고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일이 터지고 그 책임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때 크게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방어할 수 있는 자료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군요. '어떻게 하면 나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빠져나갈까'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면 우리는 '내가 비정규직이어서 그래…', '내가 여자라서 그래…', '내가 쉬워 보여서 그래…'라고 탓하지만 사실은 내가 잘 몰라서 이런 일을 겪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의할 수 없고, 내가 일을 잘 처리했는지, 잘못 처리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에 오류가 있어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잘 알게 될 때까지 무조건 참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내 상사가 나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혹시라도 내가 한 일이 잘못됐을 때 커버를 하라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내가 일을 잘 알게 될 때까지는 되도록 버티면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듣는 모든 말들에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는 항상 플랜 B, 플랜 C를 마련해 둬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배수진을 치면 긴장도가 너무 높아져서 오히려 주저앉아버리는 타입입니다.
이게 아니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보여도 찾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미련하게 참고만 있으면서 마음이 병들어가지 않았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