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을 받고 방문한 학교에서 너무도 감사하게 여기저기에 "신규 발령을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붙여주셨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이 학교에 처음 부임을 하셨기 때문에 겸사겸사 플랭카드를 제작하면서 같이 만들어주신 것 같은데 원래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성격이라서 민망하고 멋쩍였습니다.
대기업에 입사를 하면 집으로 축하 메시지와 함께 꽃다발을 보내주듯이 교장 선생님께서 입학식에 저희 부모님께 꽃다발을 전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발령과 동시에 분가를 하기도 했고, 두 분 다 일을 하고 계시는 상황이라 정중히 거절을 해 입학식에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님이 지켜보는 자리에 부모님을 대신하여 제가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학교 현관문에는 한 달 넘게 입간판에 [부임을 축하합니다]라는 공고문이 붙어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전출교: ○○학교"라고 적혀있는데 저는 "전출교: 신규발령"이라고 적혀있더군요…. 제가 신규 발령을 받은 그 해에 교과 선생님 중에서는 저만 신규발령을 받아 이 학교로 왔다 보니 이 공고문이 사람들에게 "너는 초짜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더 위축됐던 것 같습니다.
학교는 회사처럼 위계관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대부분 평교사이고 승진하면 바로 교감-교장입니다.
부장교사가 있기는 하지만 승진의 개념이라기보다는보직의 일종입니다. 담임을 하면 보직란에 담임이라고 적히고 담임 수당을 받는 것처럼 부장도 비슷합니다.
신규교사라고 해서 경력직 선생님이 멘토로 붙어서 일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업무 강도가 낮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규지만 경력직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수준을 요구합니다.
간혹 학년 부장님들 중에 신규 교사가 담임을 하면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 담임이 조·종례를 하고 있는 와중에 반에 들어오셔서 학생을 불러내 혼을 내거나, 아이들을 혼내고 있는 곳에 담임을 불러 "선생님 이렇게 지도하시면 안 되죠"라고 말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짧은 저의 생각으로는 이런 행동이 아이들 앞에서 학년 부장님의 권위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반을 통솔해야 하는 담임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담임을 무시하게 만드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한 명의 담임이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케어해야 되는데 담임이 다른 선생님들께 존중받지 못하고 혼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아이들은 담임을 믿고 따를 수 없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첫 발령을 받은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신규"라는 글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에 더 만만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학부모 상담주간을 맞아 학부모 상담을 진행하는데 저를 처음 본 학부모님들의 첫마디가 "선생님 이 학교가 처음이시라면서요"였습니다.
저 스스로도 담임이 처음이라 불안했는데 초짜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학부모님들은 얼마나 불안하셨을까요….
모든 신규 선생님들이 한 번쯤은 들어 본 말이겠지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의견을 제시하면 "아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이론과 실제는 달라요"라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아이 관련 문제로 학부모님께 의견을 제시하면 "선생님이 담임이 처음이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듣고, 업무 처리와 관련해서 의견을 내면 "선생님이 학교 일을 안 해보셔서 그러나 본데 그렇게 하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정답을 알려주지도 않고 어쩔 때는 이게 맞고, 어쩔 때는 저게 맞더군요….
일하는 방식은 학교마다, 사람마다 다 달라서 어디에서는 이게 맞는 방식이지만 어디에서는 이게 틀린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정답이 정해진 문제만 풀어왔고 임용고시가 아무리 논술형 문제로 출제된다고 하더라도 말이 논술이지 사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글을 많이 써야 되는 문제만 풀어오다 보니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고, 저 상황에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정답지가 없는 상황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고 막막했습니다.
지금이야 경력이 쌓이고 눈치가 생겨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선생님이 틀렸어요"라고 버럭 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일하면서 눈치껏 알아서 배워야 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지금이 좋은 때다"라고 하던 말이 직장 생활을 하고 이해가 됐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께서 친절히 "이건 이렇게 풀어야 해"라고 알려줬는데 직장 생활에서는 그런 친절을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 일을 하느라 바빴고, 다들 눈치껏 알아서 배웠기 때문에 정답도 다 달라 눈치보기 바쁘고 매일매일을 우왕좌왕하면서 보냈습니다.
신규 선생님들을 위해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학교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매뉴얼이 책자로 만들어져서 있습니다. 그 메뉴얼데로 하는 게 제일 안전합니다. 전임자가 하던 방식을 따라 하다가 잘못되면 다 선생님 책임이 되고 관리자가 바뀌면 기안문 쓰는 방식부터 다 변경됩니다. 학기 초에는 너무 바빠서 정신없으시겠지만 되도록이면 짬짬이 시간을 내서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학생들 앞에서 담임으로서 권위가 떨어지면 아이들은 담임의 어떤 말도 듣지 않습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머리보다는 마음이 먼저 동요해야 말을 듣습니다. 부모님 생신은 안 챙겨도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은 챙기는 게 청소년기 아이들이니까요….
선생님이 듣기에 불편한 말을 어리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시는 분과는 기싸움을 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이런 건 듣기에 거북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의 경우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런 태도가 습관으로 굳어져 고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간사한 게 사람을 봐가면서 행동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고 참기만 하면 선 넘는 강도가 점점 심해지더라고요….
어떤 분께서는 서운한 게 있으면 술자리에서 술기운을 빌려서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말하고 털어버리라고 하시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조건 참다가 술자리에서 한 번에 내뱉기보다는 맨 정신일 때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대도 나한테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고 말하게 됩니다.
내가 없어도 학교는 잘 돌아갑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는 귀찮아서 그렇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너무 과한 책임감을 느낄 필요 없습니다. 천천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 가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면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말을 듣고 자라고 부모님께서 내 앞에 놓여있는 걸림돌들을 대신 치워주셔서 나를 비난하는 말에 내성이 없습니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하지만 버티면 내성이 생기고, 내성이 생기면 방어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보호해 주기를 바래서는 안 됩니다. 나를 키워 준 온실에서 나와 야생에서 살아가야 비로소 어른이 됐다는 의미니까요….
초보운전이라는 글씨를 크게 쓰고 운전을 하면 나를 배려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느리게 가는 게 답답해 나를 빠른 속도로 추월하거나 내 앞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사고 날 뻔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론 초보운전임에도 불구하고 초보운전이라는 글씨를 안 붙이고 운전을 하는 게 더 안전하고 편하기도 합니다.
"신규"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규이기 때문에 내가 올린 문서를 윗사람들이 한번, 두번 더 살펴보고 고쳐주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날 확률이 줄어들지만 신규기 때문에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시기를 잘 버티면 반드시 그럭저럭 살만한 날이 옵니다.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는 손발을 벌벌 떨리고 네비게이션에서 우회전 지시가 나오는 순간 '어떻게 끼어들어야지'라는 고민부터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운전하며 음악도 듣고 통화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잘 버티면 점점 여유가 생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