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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Oct 24. 2024

엄마도 학교 가기 싫단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어린이집에 가면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듯이 엄마도 학교에 가서 언니, 오빠들을 기다려야 해"라고 말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학교로 향합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너는 몇 년만 지나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엄마는 계속 학교에 나가야 된단다"라고 말하는 날이 오겠죠….




  학생들이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됐어요?"라는 질문에 "그러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라고 얼버무리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학교라는 공간을 좋아한 것도 아닌데 교사가 되어 매일같이 학교로 출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촌 언니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 나도 공부를 잘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6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갔습니다. 그동안 행복한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서인지 그때는 새로운 학교에 가도 당연히 반 친구들 모두와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군이 달라서인지, 친해지기에는 시간이 짧아서 인지 학급 친구들 모두와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중학교 때였는데 대부분 같은 초등학교를 나오고, 같은 학원을 다니고, 같은 태권도장에 다니다 보니 저 빼고는 다들 친한 친구들이 있더군요…. 끼리끼리 어울려 알아서 잘 놀고 있는 친구들 틈에 끼어서 "나랑 같이 놀자"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안 그래도 소극적인 성격이 더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학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오니까 잘 지낼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성적이 좋아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입학식에 부모님을 포함한 집안 어른들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 신입생 대표로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할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중에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제 뒤수만 나와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정말 좋았습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반에 왔는데 여자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교실 뒤쪽에 일렬로 세워놓은 다음에 기압을 줬습니다. 저는 그날 유독 많이 혼났는데 그 이유는 선서하러 단상에 올라갈 때 슬리퍼가 아닌 실내화를 신어서였습니다. 눈물이 쏙 빠지가 혼난 뒤라 혹시라도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다가 선배들마주칠까봐 무서워 혼자서는 식당도 화장실도 갈 수 없었습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겪는 갈굼을 저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선배와 동기들에게 었습니다. 이웃 주민들께서 학교로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로 시작하는 민원을 넣으신 것을 보면 저만 그렇게 보고 느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희들 중에 임용고시에 통과해서 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지금부터 임용고시 공부를 해도 힘들어…"라고 말하시던 선생님을 보고 진로를 음악 교육과로 결정했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다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옹호하고 싶었고, 아니 적어도 피해자에게 자퇴서를 내미는 선생님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남들은 MT 가서 선배들과 차마시며 친목동호를 한다고 하는데 저희는 MT 가서 단체기압을 받았습니다.

 예고 3년, 대학 4년을 군대 같은 분위기에서 지내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나까"가 입에 붙어있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때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신규 시절 상사가 저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면 "네. 알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인사도 90도 칼 각으로 했습니다. 상급자의 말에 토를 다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저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얘한테는 막 해도 돼'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 키인데 매우 순종적이니 누군가를 혼내고 싶을 때 본보기로 사용하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고 혼나고, 전화벨이 3번 울리기 전에 안 받았다고 혼나고,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바로 안 왔다고 혼나고 정말 다양한 이유로 혼났습니다.


  한 번은 학생들이 다 모여있는 체육관에서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입었다고 상사에게 혼났습니다.

 예고를 다닐 때도 규정이 "치마는 무릎 위"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게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혼날만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를 조합해 보니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니는 여선생님한테 한소리 하고 싶은데 그분한테 직접적으로 말하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니 제가 혼나는 모습을 보고 알아서 깨달으라고 저를 혼내신 것 같라구요….



 

  어떤 사람은 평생에 걸쳐 한번 할까 말까 한 경험을 어떤 사람은 자주 접하기도 합니다. 제 성격이 문제인지 아니면 운이 문제인지 저는 비교적 저경력에 많은 일을 겪은 니다.

 그래도 그 시기를 잘 이겨내고 보니 요즘은 "자네 참신성이 떨어지는군…"이라고 말하며 장난 겸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 초년생분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흑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버티는 자에게 복이 올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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