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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Nov 07. 2024

페인트 칠하고 창고 청소하고 막노동하는 교사

  "학년별로 페인트를 한통씩 사두었으니 각반 담임 선생님께서는 교실에 페인트 칠을 하세요. 교실이 너무 더럽네요"라고 말하시더군요.

 태어나서 한 번도 페인트칠을 해본 적이 없고, 어떻게 할지도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저의 무지가 어느 정도였냐면 페인트칠을 할 때 붓을 쓰라고 하셔서 수채화 할 때 쓰는 붓으로 페인트 칠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붓으로 이렇게 큰 교실을 언제 다 칠하지'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금은 8개 반 정도가 페인트 한통으로 교실을 칠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는 그런 가늠조차 할 수 없어서 그냥 누군가 시작하면 그때 같이 해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지시가 떨어지고 얼마 안 있어 한 분이 주말을 이용해 페인트칠을 하셨고 학년에 할당된 페인트 한통을 거의 다 쓰셨습니다. "여기 쓰고 남은 페인트랑 롤로 있으니까 이걸로 페인트칠을 하면 됩니다"라고 말하셨고 '올게 왔구나' 싶어 막막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날 저녁 부모님께 울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교실에 페인트칠을 하고 책걸상에 있는 낙서를 다 지우라고 하는데 이 많은 낙서를 언제 나 혼자서 다 지우지?"라고 말하니 부모님께서 편도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한아름에 달려와주셨습니다.


  주말이라 학년부 문은 잠겨있고 롤러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서 부모님과 함께 아침부터 페인트 가게에 가서 페인트롤러, 붓을 샀습니다. 사장님께서 "신나"를 사용하면 책걸상에 있는 낙서를 쉽게 지울 수 있다고 하셔서 그것도 추가 구매했습니다.


  롤러로 한 번만 쓱하면 페인트가 칠해질 줄 알았는데 교실 벽이 울퉁불퉁해서 그런지 여러 번 덧칠해야 되더군요….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책걸상에 있는 낙서는 신나를 사용해서 지웠습니다. 아직도 그때 맡은 신나 냄새가 떠오릅니다. 교실 문을 다 열고 했는데도 신나 냄새가 너무 강해서 집에 돌아와서 꽤 오랜 시간 머리가 띵해서 고생했습니다.

 

  오래된 학교라 교실 바닥 가장자리에는 물이 잘빠지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도랑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그곳에 온갖 것을 다 집어넣어 놓아 악취가 풍겼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도 청소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하루종일 부모님과 함께 페인트 칠하고, 낙서 지우고, 청소하고 온몸이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엄마가 친구분과 나누신 통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요즘 교사는 페인트칠도 하더라고… 우리 때는 그런 것 상상도 못 했는데…"라고 말하시더군요.

 임용에 합격했다고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과 학교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교차되면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오래된 만큼 청소할 곳이 참 많았습니다. 기간제 교사 경험이 없던 저는 남들이 기피하는 부서 중 하나인 청소만 죽어라고 하는 부서에서 첫 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0년 넘게 아무도 청소하지 않은 창고에 혼자 남아 먼지를 뒤입어 쓰 거미줄을 제거하고 비품을 정리했습니다.

 창고가 1개가 아니라 여러 개다 보니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부장님께서 틈틈이 도와주셨지만 너무 힘들더군요.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가서 청소를 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창고 청소만 하면 다행이겠지만 저는 음악 선생님이기 때문에 음악실 관리도 했어야 했는데 관리자께서 음악실에 있는 서랍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시고는 청소가 안되어 있다며 청소를 하라고 했습니다.

 창고에는 언제 구매한 지도 모르는 고대 유물들이 넘쳐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참 막막했습니다.

 

  행정실에서 물품 목록을 받아서 사용기한 안에 있는 물건과 버릴 수 있는 물건을 구분한 후 버릴 수 있는 것은 사진을 찍어 문서작업을 한 뒤에 불용처리를 했습니다.


  음악실에는 온갖 고대 유물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나 사용했을 것 같던 철제 스피커 하나가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음악실 물품 목록에 없길래 그냥 버렸다가 행정실 담당자에게 엄청 혼났습니다. "선생님 음악실 물품 목록에 없다고 그냥 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다른 곳에 있는지 찾아 뒤에 버리셔야죠. 선생님께서 사놓으세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속으로 '고물상을 뒤지 다녀야겠구나'하고 엄청 걱정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너무 오래된 스피커여서 언제 구매했는지, 얼마에 구매했는지 등에 관한 흔적이 어디에도 없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갔습니다.


  공강 시간이어서 오랜만에 부서에 앉아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선생님 밴드부 담당이시죠. 밴드부실로 내려오세요"라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속으로 '아 올게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밴드부실로 내려갔습니다.

 "선생님 여기 캐비닛 좀 보세요. 여기가 악보를 놔두는 곳인가요? 쓰레기통인가요? 그리고 선생님이 보시기에 이게 정리가 되어있는 건가요? 애들이랑 같이 청소하세요."라고 말하고 가셨습니다.

 전 교실 청소도 아이들에게 시키지 못해 제가 청소하는 소시민이었습니다. 한 번은 애들한테 "너희가 쓰는 교실이니까 너희가 청소하고 가"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청소는 원래 선생님이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밴드부 실도 혼자 끙끙대며 청소했습니다.

 혼자서 열히 청소를 하고 나오는데 "선생님 혼자서 라는 게 아니고 애들이랑 같이 하라고 했는데 왜 혼자서 하셨어요. 애들이 자기가 사용하는 동아리 실을 스스로 치우게 하는 것도 교육입니다. 자꾸 선생님이 해줘 버릇하면 애들 버릇이 없어집니다"라고 혼났습니다.


  남들은 직장 다니면 예쁜 옷입고 하이힐 신고 샤랄라 하게 커리어우먼처럼 다니는데 저는 맨날 운동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목장갑을 끼고 청소를 했습니다.

 '내가 청소나 하자고 그렇게 열심히 임용고시 공부를 했나'라는 생각에 현타가 왔습니다.


  다시 페인트사건으로 돌아가면 제 뒤로 페인트가 부족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민원에 추가로 학교예산으로 페인트 한통을 더 구입해 주셨고 그걸로 한두분 정도 더 페인트 칠을 하아무도 페인트칠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할 일을 할 테니'라는 마인드로 안 하고 계시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으시더군요.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페인트칠을 해놓은 저희 반도 얼마 지나지 못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치우는 사람은 한 사람이어도 어지르는 사람은 여러 사람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더군요….


  그 다음년도에도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들한테 페인트칠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단체로 안 했습니다. 왜냐이미 한번 경험을 했으니까요.




  오래된 학교라 공사할 곳이 많아 매 방학 전에는 음악실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음악실에는 피아노, 합창 단상 등 무거운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무거운 물건은 인부들을 사용해서 옮겨야 하지만 신규인 저는 너무 순진했기 때문에 피아노와 단상을 옮기라는 말에 학생들 여러 명과 함께 무거운 물건들을 옮기다가 허리가 살짝 삐끗하기도 하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끼이기도 했습니다. 혼자 속으로 '학생이 다친 게 아니라 내가 다쳐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층은 어찌어찌 한 번씩 쉬면서라도 가는데 계단은 정말 답이 없더군요.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더 무거운 무게를 감당해야 하고 요은 없고 힘으로만 옮기려고 하니 온몸에 근육이 바짝 서서 한참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년도에는 못하겠다고 버텼습니다. 랬더니 인부를 써서 옮기지는 않고 그냥 비닐을 씌으고 작업하시더군요.


  대토론회를 해야 해서 음악실에 있는 단상을 토론회장으로 옮기고 그 위에 책걸상을 배치하고 하루하루가 체험 삶의 현장 그 자체였습니다.

   

  회사는 이런 일을 대부분 외주를 맡겨서 처리하지만 학교는 대부분 학생과 선생님들이 합니다.

 학교에 남자 선생님들이 필요한 이유는 목제 가구를 옮기거나 전교생 시험지를 옮기는 등 힘쓰는 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닌 곳은 남자 선생님보다 여자 선생님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여자들도 무거운 것을 옮겨야 했습니다. 남자 혼자서 들 것은 여자 둘이서 들었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은 나이 든 선생님 보다 체력이 더 좋으니 두 번 움직였습니다. 신규는 신규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신규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선생님 교직 좁아요. 여기서 안 좋은 소문이 나면 어디를 가든 그 소문이 따라다녀요."라는 말이랑 "나 때는 더 했어"입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나이 든 선생님들대우해 줘야 되는 학교의 경우 특정 몇 명에게 일이 몰려있 경우가 있습니딘.

 "일을 많이 하면 성과급이 잘 나오는 거 아니냐?"라고 질문하실 수 있지만 "글쎄요…" 저는 거의 대부분 최하 등급을 받고 초과 근무수당도 못 받고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했습니다. 주말에도 출근해서 무급으로 일했습니다.


  지금 다시 신규시절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마감기한 전에 미리 마무리를 해놓지 못하면 못 견디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을 매우 싫어니다. 하지만 일찍 하면 또 다른 일이 몰려오고 제가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못했다고 질책더군요. 차라리 쭉 못하다가 어쩌다 한번 잘하면 칭찬해 주는 모습을 보고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너무 열심히 할 필요도 없고 너무 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남들 하는 정도만 하면 됩니다.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여러 명이 같이 달라붙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늦게 제출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일정이 꼬이게 니까요.

 다만 청소하러 교직에 들어온 것이 아닌 만큼 부당한 지시에는 버티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게 안 통할 경우는 버티면 됩니다. 원래 이런 싸움은 질긴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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