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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Nov 14. 2024

이런 거 배워서 뭐해요? 수능에 안 나오잖아요.

  저는 체벌이 허용됐던 때에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는 시를 못 외워서 허벅지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았고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맞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께 맞은 기억은 많이 없지만 선생님께서 선배들에게 "너네 후배관리 제대로 안 하니"라고 말하고 가신 날은 3학년이 2학년 단체기압을 주고 2학년이 1학년 단체기압을 주면서 해지는 갈굼을 당했습니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선생님들마다 전매특허 매가 하나씩 있었는데 이 시절 저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하면 "선생님 언제적 사람이세요?", "선생님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시군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맞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립스틱 뚜껑으로 정수리를 맞으면 그렇게 아프다고 하더군요 :)




  중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하는데 수업시간에 자고, 수학 문제 풀고, 떠드는 아이들이 참 오랫동안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강사생활을 그렇게 오래했는데도 매년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왜 그럴까'하고 생각을 해보니 강사 때는 내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고 지금은 강제로 들어야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시간제 강사로 음악수업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으나 대부분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3학년과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어리고 예쁜 1학년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5학년과 6학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할 때도  2개 반을 합반해서 수업을 하다 보니 저 외에 학생들을 지도해 줄 선생님이 한두분 더 계셨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리코더 수업을 하는데  한아이가 "선생님 저 물 주세요"라고 하던군요.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줬더니 "이 물 말고 내 물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초등학생은 저보다 몸집이 작고 아직은  선생님 말을 들을 때라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강사생활을 할 때만 해도 학부모님께서 학교에 방문하는 것을 어려워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임용되고 얼마 안 있어 학부모 상담을 진행할 때는 제가 학부모께 대접할 다과를 준비해야 되는 것으로 바꼈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 학부모님께서 선생님 고생하신다고 음료수 한잔 건네주시면 폭풍 감동을 해서 사돈의 팔촌이야기, 시집살이 이야기 등을 1시간 넘게 들어드려도 피곤한 지를 몰랐는데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게 대접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보니 다 일로 느껴더군요.




  저희 반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 중 한분이 수업시간에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혼을 냈는데 그게 기분 나쁘셨는지 담임인 저에게 학부모님께서 항의를 하시면서 담당 선생님 연락처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연락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상황이라 중간에 매우 난처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감독 중인 시험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종이 울려서 시험지를 걷었다가 "아이가 시험 볼 의지가 있는데 시험을 종료시켰다"는 민원이 들어와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었습니다.


  음악 시간마다 자거나, 수학 문제 풀거나, 친구랑 떠드는 학생이 있어서 "수업시간에 그러면 안돼"라고 말했더니 "음악은 수능에 안 들어가잖아요. 내신 성적도 반영 안 되는데 뭐하러 해요?"라고 말하더군요.


  한 번은 곧 시험이라 자습을 줬는데 친구들이랑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가 귀찮은 듯 짜증내면서 "이렇게 시간낭비 할 바에는 밖에 나가서 운동장이나 뛰고 올게요"라고 말더군요.

 

  남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수능 과목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음악도 중요해 공부해야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게 힘들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두마디, 세마디 뭐라고 하고 수행평가 점수에 이의 있다고 증거자료를 내놓으라고 하는 통에 모든 실기시험 녹음하거나 녹화해서 이의제기를 한 학생과 같이 보면서 이건 이래서 감점됐고, 저건 저래서 감점됐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다른 친구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자기가 틀린 건 맞지만 저 친구보다 자가 점수가 낮은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이의제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람 봐가면서 한다는 것을 순외교사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저랑 같이 수업에 들어가는 음악 선생님께는 무서워서인지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더군요.




  학생들이 수업을 안 듣고 우리 반 수업을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신다고 선배 교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무섭게 가야 한다", "나는 창문 밖으로 애들 가방 다 집어던졌"라고 말하셔서 '언제 한번 나의 무서움을 보여주겠어'는 생각을 가지고 d-day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가죽재킷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후에 오늘도 역시 시끄러운 반에 가서 큰 소리로 "너희들 조용히 못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보다 금세 조용해져서 '역시 이 방법이 맞는군'이라고 오해하며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무로 된 사물함을 향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던졌습니다.

 예상하신데로 "풉"소리가 나오더니 저는 그 뒤로 호구가 됐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중 블랙하선의 모습


  사람마다 본인에게 맞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상이 무섭고 풍기는 아우리가 있어 아무말을 안하고도 학생들을 무섭게 잡을 수 있지만 저같이 평소 웃음이 헤프고 마음이 약해서 상담 후에는 먹을 것 주면서 돌려보내는 타입은 강하게 가는 맞지 않더군요.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받습니다.


  주위에 "아 답답하네 이렇게 못해요. 그러니까 애들이 무시하지"라고 말하면서 본인 방식만을 강요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러려니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나한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게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세상에는 세모인 사람도 있고 네모인 사람도 있고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알록달록 살고 있는데 "이렇게 해야 해", "내 말이, 내 방식이 맞아"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만 풀다 보니 우리는 사회생활에서도 정답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 정답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니까요. 이 사람한테 맞는 게 나한테는 안 맞는 아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저에게 대들면 그 시간은 건드리지 않는 편입니다. 대신 시간이 좀 지나 감정이 누그러지면 긴 대화를 나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자기가 한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리니 욱하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에 과격한 행동을 보이 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한 번씩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지만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되니 조금더 잘 참게 된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내 아이 같아 안쓰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한 반에 나를 공격하는 아이가 둘 이상만 돼도 내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위축될 때가 있지만 아무 말 안 하고 앉아있어서 그렇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속으로 이 상황이 잘못됐고 선생님이 옳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아이들과 시름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는데 제 자리에 카네이션이 놓여있더군요. '누가 놓아둔 거지?' 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선생님 힘내세요 -수호천사가-"라는 편지가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놓아둔 건지 알고 주인을 찾아다녔는데 방송반 아이가 "그거 선생님꺼 맞아요. 누가 놓아둔 건지 알지만 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 항상 선생님을 응원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감동해서 울뻔했습니다.


  지금도 저만의 완벽한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안정된 교직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마시고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음악교사로서 회의감이 들 때 "음악도 배워야 줘. 세상은 국영수만 잘한다고 되는것도 아니잖아요. 마음이 피폐해져 있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의미 없어요", "가르칠 필요가 있어서 교육과정 안에 들어온 것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게 우리의 역할이잖아요. 수능과목이 아니라고 기죽을 필요 없어요"라는 말이 도움이 됐습니다.


  남의 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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