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남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드냐, 여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드냐"를 가지고 한참 논쟁을 벌였습니다.
남편은 "남자 아이들은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에 예측이 안돼서 힘들어"라고 말하고 저는 "남자 아이들은 단순해서 이것저것 막 집어 던지면서 화를 내도 맞서 싸우지 않고 화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만, 여자 애들은 안그래"라고 말했습니다. 제 말에 남편은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모두를 길러본 엄마들은 대부분 남자 아이들이 훨씬 힘들다고 그래"라고 말하고 저는 "여자 애들은 예민하고 감정적이여서 남자 선생님도 여자 애들을 힘들어하고, 여자 선생님도 여자 애들을 힘들어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는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8년 넘게 교직에 있으면서 내가 겪어 온 경험이 무시당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서운했었습니다.
의사들이 무슨 말을 하면 환자들은 반박하기보다는 의사를 믿고 따르는 편이지만 교육에 대해서 교사가 무슨 말을 하면 여기저기서 "이게 맞다 저게 맞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에 있어서는 교사도 전문가이지만 유튜브나 TV 방송에 전문가로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정신과 의사들입니다. 우리가 기르는 아이들은 대부분 보통의 아이들인데 극단적인 케이스를 주로 다루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더 신뢰를 보이는 일반인들의 모습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교사는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 감정적으로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교사와 학부모의 입장을 동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교사가 케어하기 힘든 학생은 학부모도 케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단순하다"라는 말을 합니다. 사고를 쳐도 남자 아이들은 거짓말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덜 머리가 아프고 끓는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다가 식어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면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바로 사과합니다. 의리라고 할까요… 한번 내 편이 되면 남자 애들은 잘 도와줍니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거나 혼자 청소를 하고 있으면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는 것도 남자 애들이 더 많습니다. 선생님께 혼났어도 초코바 하나에 기분이 풀어져서 돌아가는게 남학생들입니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다릅니다. 감정을 잘 건드려줘야 해서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 아이이 나한테 어떤 역할을 원하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내 말 중에 어떤 말이 이 아이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등을 세심하게 살피며 말해야 합니다. 한번 사이가 틀어져버리면 관계를 회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잘 지냈다가도 뭔가 마음에 안드는 말을 들으면 표정이 확 바뀌면서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 말을 이해했는데요. 저는 기분이 나쁘네요.'라는 식의 논리로 가게 되면 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게 무의미해집니다.
남자 애들은 공하나 던져주면서 같이 축구하고 피자를 먹으면 쉽게 친해지지만 여학생들은 다릅니다. 지속적으로 개별 상담을 하고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도 쉽게 친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건 어디까지나 학부모가 아닌 선생의 입장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남자 아이가 더 키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 애들이 큰 사고를 안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 애들의 도박, 폭행, 절도 등의 사건사고 스케일은 확실히 여학생 보다 큽니다
여자 애들은 부모와의 사이가 틀어지는 정도지만, 남자 아이들은 경찰이 개입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사자 외 제3자가 사건에 개입해야 되는 일이 자꾸 발생하고, 큰돈을 들여서 합의를 하고 치료비를 물어줘야 하는 상황을 맞닥드리면 여자보다 남자 아이를 키우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어떤 한 분야에서 10년을 일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직에 들어선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당신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가요?"라는 질문에 무슨 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해가 갈수록 "라떼"와 다른 생각과 사고를 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이러다 레알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듭니다.
신규 때 선배 선생님에게 "왜 승진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 들면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들어져요. 교장, 교감을 해야 학교에서 그나마 오래버틸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하셨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며칠 전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수를 듣는데 문득 '지금은 젊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적용을 하는 게 너무 재미있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도 이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교육과정이 개정이 되고 있고 새로운 과목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학교, 높은 학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안 듣고, 제 말을 안 들으면 '내가 SKY를 안 나와서 그러나… 역시 그때 어떻게 해서든 서울대에 갔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섞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얘들아 용꼬리가 뱀대가리 보다 낫다. 꼬리여도 용은 용이다. 무조건 상향지원해라"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 어디 대학교 나왔어요?"라고 질문을 하면 "나 ○○대 나왔어"라고 말하지 못하고 "전국에 음악 교육과가 몇 개 안돼. 너네가 좋아하는 서울대, 연대, 고대에는 음악교육과가 없어"라는 사설을 단 후에 "선생님도 공부 잘했다"라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이 없어 보이더군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하고 싶어서 나름 연수도 열심히 듣고, 책도 이 분야 저 분야 틈나는 대로 읽어 수업에 적용하는데 정작 학생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이게 아닌가? 내 방법이 틀렸나'라고 생각하며 "다 의미 없어"를 외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공부를 아주 조금 잘한다고 주위에서 "오냐오냐" 해서 저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해줘야 그동안의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10년 넘게 가르쳤는데 남과 비교해서 내가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들었을 때 "우와"하는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말을 엄청 잘해서 수업이 미치도록 재미있는 것도 아니여서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뭘 잘하는 거지?'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노하우라고 부를만한 저만의 비기가 없습니다.
단지 사건이 터지면 경험적으로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이런 이유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닐까'하고 추측하고 증거를 찾을 뿐입니다. 그러다 이유를 찾지 못하면 참신하고 기발한 사고를 친 아이들을 생각하며 '혹시 이 아이도…'라고 생각합니다.
별 노하우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생각의 경우의 수가 많아져 사건을 빨리 처리하고, 실수도 덜 하게된 것 같습니다.
실수를 전혀 안 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실수를 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니까요.
퇴직할 때는 신규 선생님에게 "내 노하우를 전수해 주겠어"라고 말하며 쓸모 있는 저만의 비기책을 전수해 줄 정도로 성장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