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 중에는 성장 호르몬과 피지선의 활성화로 인해 체취가 강하게 느껴지고 두피에 기름이 많이 지면서 비듬이 심해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 중 한 명이 그랬는데 "선생님 재는 씻지를 않나 봐요. 옆에 앉고 싶지 않아요"라는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어머님께 돌려 돌려 말씀드리면 "매일매일 잘 씻고 있어요"라고 하셔서 '어떻게 해결하지…'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저희 반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 중 한 분이 저에게 "선생님 개 더럽다고 애들이 가까이있는 거 싫어하던데 알고 계셨어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어머님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개선이 안되네요…."라고 말했더니 "선생님 나 때는 목욕탕에 데려가서 씻기고 속옷도 사입히고 그랬어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애 엄마가 된 지금도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랑 같이 목욕탕에 가는 건 심히 부담스러운데 그때는 미스라서 더 부담스럽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옷도 사줬다고 하셨는데 '안그래도 적은 월급인데 내 사비로 옷도 사줘야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을 데리고 외부 활동을 나가면 예상치 못한 일을 종종 만납니다.
에스컬레이터에 발이 낀 아이를 119에 신고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시킨 적도 있고, 입장대기 도중 아이 한 명이 갑자기 실례를 하는 바람에 편의점에서 급하게 속옷을 구입해서 입히고 혼자남아 뒤처리를 했습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무임승차를 한 아이가 역무원에게 반항적인 태도를보여 벌금을 물리겠다는 역무원에게 대신 사과를 하고 선처를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녀서 일수도 있지만 저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체험학습을 갈 때는 항상 버스를 빌려서 단체로 이동을 했는데 수도권은 다르더군요. 대중교통을 타고 반별로 또는 개인별로 알아서 이동했습니다.
지하철을 처음 타는 아이들과 도중에 어디로 셀지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1시간 이상을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고 약속장소로 오라고 했습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해맑은 아이들인데 학교 밖을 나왔서 놀러 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그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떠들고, 교통약자배려석에 앉아있고, 통로에 여러 명이 모여있어 통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고 있었습니다. "어디 학교에서 체험학습 왔나 보구먼… 선생님은 얘네들 지도 안 하고 뭐하나?"라는 말이 들려 황급히 여기저기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얘들아 학교 밖에서 이러면 안 돼"를 시전하고 다녔습니다
하차를 잘못하는 바람에 일행과 떨어졌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찾으러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반 아이 중에 매일같이 병원에 가는 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 중 한분이 저에게 "선생님 매일같이 같은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오는데 이게 진짜면 이 아이는 이 병원을 다닐게 아니라 큰 병원을 가야 해요. 아픈 게 아닌데 매일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주는 병원은 좀 그러네요. 알아보세요"라고 하셔서 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 아이가 아픈 게 맞냐, 매일같이 처방전을 받아오는데 이래도 되는 거냐 등등을 물어봤는데 역시나 언짢아하시더군요.
과민성대장증후군 때문에 걸핏하면 화장실에 있느라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늦게 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부모님한테 연락해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하세요"라고 하셔서 어머님께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셔서 그대로 전달해 드렸는데 "부모님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 잘 관찰하세요"라고 하셔서 '어디까지가 내 일인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 중 한 곳은 사고 등의 문제로 교실에 교사가 없는 시간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담임이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 있어야 했습니다.
음악실-교실-교무실을 바쁘게 오가다 보니 그때는 하루에 1만보 이상 걸었습니다.
체력이 부족해서 오후에는 잠이 쏟아지고 너무 힘들어서 살려고 운동을 다녔습니다.
점심을 먹다가 반에 무슨 일이 터지면 황급히 뛰어가야 하고, 반에 희귀병을 앓고 있거나 특수반 아이가 있으면 그 병에 대해서 의사만큼 자세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고, 반에 절도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과 같은 수사권은 없지만 범인을 찾기 위해 추리를 해야 합니다. 때론 엄마처럼 아이를 먹이고 입히기도 합니다.
교사는 "이래야 된다"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그 모든 역할을 다 수행할 능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학 초반에 '교사관'이라고 해서 성직자관, 노동자관, 전문직관이 나오는데 교사도 월급 받고 일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 이 한몸 불살라보겠습니다'라는 생각도 의욕도 없습니다.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나 자신 스스로가 어디까지가 내 역할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번아웃에 시달리게 됩니다.
예전에는 저 스스로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걸 오래하기도 했고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생을 나가도 교수님께 수업실연 지도를 받아도 다들 "가르치는게 몸에 배어있네요.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 같아요"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교사가 나의 천직이구나'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잘 가르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무일도 안 일어나는게 하는게 중요한겁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선생님"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다 후임 선생님이랑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전 교사도 노동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월급쟁이로서 워라벨을 지키며 살아야줘. 그러려고 대기업에 취직안하고 공무원 한건데요"라고 말하셔서 '어! 그러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잘하려고 아득바득 노력하며 늦게까지 남아서 학생들 지도하랴,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으랴 정신이 없는데 워라벨을 지키며 학생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건 여기까지야"라고 선을 긋는 후배 선생님이랑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때로는 후배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더 능력있게 보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하기로 했습니다. 잘하려고 오버해서 노력하는게 아니라 적당히 제가 할 수 있는것만 하고 못하는 것은 넘기거나 한귀로 흘려듣기로 했습니다.
저는 애들보다 제가 더 소중합니다. 참교사 아니라 월급받고 일하는 월급쟁이 직장인일 뿐입니다.
직장인은 어디까지나 돈 받은 만큼만, 내 일만 잘 해내면 됩니다. 과도한 책임감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