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급을 나누는 사람들

by yuri

"여러분 ○○실을 항상 열려있습니다.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찾아가면 담당 선생님께 "선생님 애들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키셨어요?"라고 말하며 혼내는 상사가 있습니다. 애들은 아무 생각없이 워딩(wording) 그대로를 믿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가지만 정작 담당자는 또 한소리 들을까봐 덜덜 떱니다.

"네"가 아니라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라는 의견을 내면 "내가 선생님이랑 말할 급이야?"라고 말하며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라는 듯 선을 긋고 급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토벤은 아버지에게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커서도 권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저 역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인데 나도 모르게 "선생님 나 때는 더 심했다"라고 말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나도 어떨 수 없는 젊은 꼰대인가'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위계관계가 명확한 군대 같은 곳이었습니다. 1학년이 잘못하면 3학년이 2학년을 혼나고, 2학년이 1학년을 혼냈습니다.

다단계식 질책이 힘든게 개인의 잘못이 단체로 가고, 학년을 내려오면서 갈굼의 강도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간호사 태움 사건을 보고서 일반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 분노하지만 저는 '환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의료계는 긴장하고 일해야 하니까 군기 잡는 문화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할 때 남들은 다 활을 아래로 긋고 있는데 한명이 활을 위로 긋고 있으면 그날 공연 전체의 완성도는 확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런 실수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하며 연주하라는 의미로 선배들이 후배들 기강을 강하게 잡았습니다. 오케스트라 파트 악기들이 가장 심하고 작곡 파트가 가장 약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무대 정리를 빨리빨리 안했다고 단체 기압을 받고, 선후배 간의 일인데 선생님이 개입하게 만들었다고 단체로 선배들에게 머리채를 잡혔습니다.

그런 군대식 분위기가 힘들어서 전공 선생님께 말하면 "우리 때는 산에서도 굴렀어. 눈떠보니 병원이더라"라고 말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도 산뜻하게 매 맞는 소리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문제 틀린 개수대로 맞고, 시를 못 외워서 맞고, 준비물을 못 가져와서 맞고 다양한 이유로 맞았습니다.

한 번은 누군가 교실 밖으로 휴지를 던졌는데 범인이 나오지 않아 단체로 책상 위로 올라가서 무릎을 꿇은 상태로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전교 1등은 공부해야 된다며 "○○아 너는 손 내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전교 10등 밖으로 벗어나는 아이들은 이름으로 불릴 자격도 없어 그냥 학생1, 학생2야"라고 말하시더군요.


이런 환경에서 커서 그런지 급을 나누고 위계를 나누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운동권이지만 행동은 지극히 소시민이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요즘 세대들은 특히 권위에 대한 강한 저항을 드러냅니다. 예전에는 직위가 높고 나이가 많으면 대우받았습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는 싸울 때 "너 몇 살이야?", "이런 나이도 어린게"라는 말이 꼭 나옵니다.


옛날은 세상이 바뀌는 주기가 매우 길었기 때문에 마을에 기록적인 홍수나 가뭄 같은게 몇십 년 만에 한번 일어나면, 그 일을 해결하기위해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분의 경험과 지혜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합니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2년마다 2배씩 성장한다고 하지만 인공지능의 성장 속도는 이보다 7배나 빠릅니다. 이마저도 가속도가 붙어 지금은 3~4개월에 두 배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 7월 21일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하루만에 새롭게 갱신되었습니다.


"5년,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만들어졌던 데이터와 지식들이 과거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소셜 미디어, 새로운 소비와 소통 방식 등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비교적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는 반면 나이 든 세대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에게 배우고 도움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 젊은 사람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MZ들은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나보다 직위가 높아서' 등의 이유로 특정 사람의 말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내가 배울 것이 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야 비로소 그 사람을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나보다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따르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멋진 분도 따르고 싶습니다.


강사기간을 포함하여 10년 넘게 학교에서 일하면서 저에게 깍듯하게 인사해 주는 교감 선생님을 두 분 만났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훌쩍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에게 깍듯하게 인사해 주시고 "선생님 도와줄 것 없나요?"라고 항상 물어봐주셨습니다.

민원이 생기면 최전방에서 처리해 주시고 특별히 문제 되는 일이 아니면 조용히 넘어갈 줄 아는 그런 교장선생님도 만났습니다.

이런 분들 밑에서 일할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했고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짧은 시간만 함께하는 게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학생들에게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살아지고 이직을 통해 내 연봉을 올려야 되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 이미 됐다고 말합니다.

"나 ○○다녀"처럼 어떤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야는 내가 전문가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직장명을 때고 내 이름 세글자만으로도 함께 일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은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내린 나라로, 장유유서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점차 서구식 마인드와 가치관에 익숙해지고 있고 젊을수록 특히 더 평등한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이보다는 능력과 성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협력 관계를 선호합니다.


저 역시 젊은 세대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나이가 들면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면서 대우받으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그럴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오늘도 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젊은 사람들이 자주 소통하다보면 좀 덜 꼰대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



keyword
이전 11화승진을 꼭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