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찰서 가는 교사

by yuri

※ 어제 업로드를 하면서 브런치북을 설정하기 않고 해당 글을 게시하는 바람에 재업로드 합니다.

※ 어제 올린 글과 내용의 변화는 없습니다.


저녁 10시 "선생님!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니 방금까지 술 마신 흔적이 있는데 다들 도망가고 선생님 반 애 한 명만 쓰러져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애가 깨어나지 못해서 지금 응급실로 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선생님은 차가 없으니까 우선 내가 가보고 상황 봐서 연락 줄게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끈으셨습니다.

그게 제가 교직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경찰"과 "병원"이라는 단어를 실감 나게 피부로 느낀 첫 사건인 것 같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합니다. 어른들은 갈등 상황이 생기면 "원래 이런 거는 술자리에서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푸는 거야"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그걸 청소년기 아이들이 따라 하다가 한 명이 급성 알콜성 쇼크가 왔고 같이 술을 마시던 애들은 웃고 떠들며 같이 놀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지니 무서워서 119를 부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갔습니다. 다행히 인근 주민분께서 고성방가로 경찰에 신고를 해준 덕분에 해당 장소로 출동을 해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그때는 다음날 아침이 됐는데도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이러다가 큰일 치르겠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방학 중 근무조로 뽑혀서 출근 후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학교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학교죠. 여기 경찰서인데요. 저희 서로 오셔서 학생들을 데려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고 경찰서로 가보니 만취한 학생 8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객기에 많은 술을 마셨는지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자꾸 토하는 바람에 오전 시간 내내 경찰서에서 아이들이 토를 치우고 또 치웠습니다.

지금이야 애기 엄마라 이런 상황이 덜 당황스럽지만 그때는 경찰서에 가본 것도 처음이고 또 이렇게 많은 토를 치워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러려고 교사가 됐나?'라는 생각을 하며 휴지로 부산물 덩어리를 치우고, 바닥을 걸레로 닦았습니다.

저희 반 아이도 아니고 부모님 연락처를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 보호자 인계 서류에 사인을 하고 학교로 데려와 담임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로 부모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게 조치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 경찰을 만날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학생 상담 중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뜬 그 찰나의 시간을 이용하여 아버지에게 전화하려다가 112로 잘못 전화하는 바람에 형사가 학교로 찾아온 일도 있고, 선생님이 훈육하는 것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생 덕분에 학교로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보호관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애가 사고를 쳐서 경찰이 학교로 출동을 해서 학생을 체포해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담임 선생님께서는 감옥에 반 아이를 위해 교도소로 사식을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교사가 되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모범생 그 자체의 삶을 살아오셔서 "경찰", "경찰서"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덜컥 겁부터 납니다.

유독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반이 있습니다. 주위 선생님들 중 꼭 "반 아이들은 담임 닮아간다"라는 말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 반에 사건 사고가 끈이질 않는 것은 다 내 탓인가?', '내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자책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잘못하면 엄하게 훈육을 하고 체벌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도 신고가 접수되어도 학생들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 저 ○○ 잃어버렸어요. 찾아주세요"라고 신고를 해도 담임 입장에서 "자 모두 눈 감아보세요. ○○ 가져가는 친구를 본 사람은 조용히 손 들어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을 가져간 친구를 본 학생은 담임 선생님에게 조용히 카톡이나 문자를 주세요. 누가 신고했는지 알려고도 하지 말고, 선생님도 누가 신고했는지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연락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범임을 찾겠다고 종례를 하지 않고 늦게까지 학교에 아이들을 잡아두고 있으면 학부모님께 "선생님 저희 애 학원 가야 하는데 늦게까지 학교에서 잡아두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애 학원비가 얼마인 줄 아세요?"라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선생님 저 그거 꼭 찾아야 해요. 비싼 거란 말이에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비싼 거면 학교에 가져오지를 말았어야지… 물건을 가져간 사람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면 선생님한테 맡겼어야지"라는 말을 하며 아이를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한동안은 학생들이 저에게 "비싼 패딩", "돈", "에어팟" 등을 맡기는 통에 제가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학생들의 물건을 넣어둔 사물함이 잘 잠겨 있는지 수시로 확인합니다.




교직에 있다 보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수사권은 없는데 수사를 해야 하고 때론 거짓말을 하는 아이와 심리전을 펼치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합니다.


전 사람 말을 잘 믿고 마음이 약한 편이라 학생들이 이를 악용해서 불쌍한 척을 하며 "선생님 전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저는 바보같이 "선생님이 오해해서 미안해"라고 말하고 먹을 것을 들려주며 아이를 돌려보냅니다. 그러면 얼마 있다가 다른 아이가 "선생님 개 맞아요"라고 말하며 증거를 가져옵니다.


분명히 반 아이들 모두가 아침에 핸드폰을 제출한 상황인데 자꾸 여기저기서 "선생님 우리 반에 핸드폰 안 내고 수업시간에 SNS 하는 애가 있어요"라는 신고가 들어와서 정확한 증거를 잡아야 말려들지 않겠다는 생각에 꺼져있는 아이들의 핸드폰이 통신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고 SNS를 뒤져 마지막 활동 기록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잘 웃는 편이라 훈육할 때는 웃지 않기 위해 긴장을 바짝 하는 편인데 이를 안 저희 반 학생 몇 명은 제가 분위기를 무겁게 잡고 반에 들어오면 저를 웃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웃다가 긴장이 풀려서 아이들을 엄하게 혼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교무실에 돌아와 '나는 왜 이렇게 무른 걸까?'하고 자책합니다.




여기저기서 나에게 많은 역할을 요구하지만 그 모든 요구들을 다 들어주면 부담감에 짓눌려 무너지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지 그 바운더리를 잘 설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이것도 해야 해, 저것도 해야 해"라는 말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설정한 바운더리를 넘어가는 일은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지 뭐…'하고 놓아줄 필요도 있습니다.


애가 사고를 치고, 경찰서에 가는 것이 내 책임도 아니고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계속 지도하면 '2번 할 것 1번 하게…',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 보고 행동하게…'는 할 수 있겠죠. 딱 거기까지가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개과천선 시키는 건 제 영역 밖의 일입니다.

"비겁하다"고 이야기하고, "그러고도 선생이냐"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2명의 담임이 아니라 28명의 아이들의 담임이니까요.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착한 아이에게 역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치는 아이들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해서 교사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아픈 손가락이기 때문에 조금 더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수는 있겠죠. 딱 거기까지가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전 모두가 우러러보는 교사의 표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 직업이 교사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니까요….

keyword
이전 12화급을 나누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