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아버지께서 ▲▲이가 카톡으로 ○○이에게 말한 내용을 복원하셨고, 내일 변호사와 함께 학교로 오신다고 하네요. ▲▲이 담임 선생님이라서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하며 깊은 한숨과 함께 고민에 빠졌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잘못한 녀석 편은 단 1도 들어주고 싶지 않았지만 "담임이 되어서 자기 반 애 하나 똑바로 관리하지 못하고 뭐하고 있었어요"라는 질책을 받고 싶지도 않고 "담임이면 어떤 상황이어도 제 편을 들어줘야지 왜 다른 아이 편을 들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싫어 머리를 감싸 쥐고'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했습니다.
학생들 간의 문제에 변호사가 개입한 것도, 삭제된 카톡을 복원해서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도 처음 보는 상황이라 "잘못 처리하면 복잡해지겠는데…"하고 한숨만 쉬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돈으로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평소 주위에 친구가 많지도 않고, 잘 나가는 학생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일명 노는 친구들의 쩐주 노릇을 하며 PC방비, 간식비 등을 대신 계산해 줬습니다.
"친구 사이에 이런 것쯤은 대신 내줄 수 있지? 너희 집 잘살잖아", "내가 나중에 갚을 테니까 대신 내줘"라는 말로 우정과 학교폭력 사이를 교묘하게 오갔던 문제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제법 큰 액수를 요구했고 평소 용돈을 풍족하게 줬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낌새를 이상하게 생각한 가족이 아이의 휴대폰 기록을 살펴보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문제아 학생들은 카톡 기록이 추후에 증거자료로 쓰일 것을 염려했는지 본인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금전적인 요구를 하기도 하고 "나가기" 버튼을 눌러 카톡 기록을 삭제하라는 요구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혹시나 기록이 남을 것을 우려해 카카오톡 탈퇴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문제아 측 부모님께서 그간 아이가 갈취한 돈을 변상해 주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사과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더 글로리>가 인기를 끌고 뉴스에서 종종 학교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이 등장하면서 학교폭력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남에 따라 요즘은 학교폭력사건에 종종 변호사가 개입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도서관에도 어느 순간 학교폭력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입고되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 문제 처리를 제일 힘들어합니다. 남학생들은 주먹과 돈이 오가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여학생들은 평소에 잘 지내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기 애매합니다.
관계가 좋을 때는 기분 나빠도 그냥 지났갔던 말이 관계가 틀어지면 증거자료가 됩니다.
"네가 어떻게 나를 신고했어? 그럼 나도 신고할래"라고 말하며 서로가 서로를 신고하고, "네가 잘못한 거야… 나는 잘못이 없어"라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섭외합니다.
미국이 소송의 나라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한국도 점차 소송의 나라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학생들 간의 싸움에 변호사가 개입해서 법원까지 넘어가는 것은 못 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맞고 오면 저희 부모님께서는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선생님께 혼났겠지…"라고 말하시며 저를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학교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간혹 선생님 중에 옛날처럼 아이들을 훈육할 때 큰 소리를 내고 애정 어린 욕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요즘 학부모님들은 '어디 감히 교사가 내 아이한테'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학교에 민원을 넣으시고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십니다.
사고 수습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유로 몇 년간 해당반 담임으로서 법원에 들락날락거렸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직에서 잘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제 앞에서 서류를 찢고 거울을 던지고 나가는 학생에게 저는 뭐라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일이 얽히면서결국에는 제가 학부모님께 탄원서를받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훈육하고 이럴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교사로서의 의무이자 할 일이지만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문제가 터지면 다 제 탓으로 돌리는 일부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아 무력감과 회의감에 시달렸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변호사도 보고 경찰도 보면서 때론 '어차피 말해도 안 듣고 잘못되면 다 내 탓을 하며 민원을 넣을 건데… 자칫 잘못해서 학생의 행동에 과민반응했다가는 고소장이 덤으로 날아들 수 있는데 뭐 하러 열심히 하나'라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학생과 학부모님과 시름한 날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교사인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것이겠죠…. 교사는 참 어려운 직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