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배경, 9.11 테러와 오사마 빈 라덴
전 세계는 TV 앞에 얼어붙었습니다.
두 대의 민간 항공기가 뉴욕의 상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정면으로 들이받았고,
또 다른 항공기 한 대는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을 강타했습니다.
마지막 항공기는 승객들의 저항 끝에 들판에 추락했습니다.
2,996명.
이 날, 아무런 잘못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수입니다.
이 전대미문의 테러를 지시한 인물은
사우디아라비아 재벌가 출신의 이슬람 극단주의자,
오사마 빈라덴이었습니다.
1957년, 오사마 빈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중동 최대 건설회사 중 하나를 소유한 ‘빈 라덴 가문’의 아들이었고,
유복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가족과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점 극단적 이슬람 사상에 심취하며,
종교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로 변해갑니다.
그의 변화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가속화됩니다.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빈라덴은
’ 성전(지하드)’을 외치며 이슬람 무장 세력과 함께 싸웠고,
전투 경험과 인맥, 자금을 축적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우디로 돌아온 그는,
조국 땅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성스러운 땅에
이교도의 군대가 발을 들였다는 것은
그에게 종교적 모독이자 선전포고였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미국을 ‘적국’으로 규정하며,
본격적인 반미 테러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1988년경, 그는 전쟁에서 함께한 자신의 휘하 조직을 ‘알카에다’로 재편합니다.
이 조직은 이후 반서방을 표방하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테러를 주도하는 무장 세력으로 규모를 넓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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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사력의 기반인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그들은 재건을 해야만 할 것이다. “
라는 말과 함께 그는 당시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던,
국제 무역 센터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의 지시로
민간 항공기 4대를 공중 납치한 테러범들은
그중 2대를 세계무역센터에,
1대를 펜타곤에 충돌시킵니다.
이 테러로 수천 명이 사망했고,
세계무역센터는 붕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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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미국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CIA는 빈라덴 추적을 위한 전담 조직을 꾸렸고,
세계 각국과 공조하여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체포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빈라덴은 알카에다를 통해 영상 메시지를 전하며 생존을 알렸지만, 구체적인 행방은 10년간 묘연했습니다. 영상을 통해 전하던 생존신고도 테러 후 6년 뒤인 2007년이 마지막이었기에, 그가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생겨났죠.
하지만 미국은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음을 확신하며 그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추적은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정부를 거치는 10년 동안 이어졌으며,
치러진 선거들에서 빈라덴 제거는 모든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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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추적 끝에, CIA는 빈라덴이 파키스탄에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빈라덴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CIA는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주사기 잔여물을 통해 빈라덴 아이들의 DNA가 확인되었고,
CIA는 마을을 특정하는 것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주소지를 바로 특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보건소 같은 곳에 아이들이 직접 와서 접종을 받는 시스템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파키스탄의 호화 주택가였던 아보타바드에서
CIA는 마침내 그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합니다.
5m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구조를 가진 저택이자,
외부와의 통신이 불가하고, 나오는 쓰레기마저 전부 소각하던 수상한 저택이었죠.
CIA는 해당 저택이 빈라덴의 거주지일 것이라 판단하고,
주변 건물에서 지속적으로 감시를 이어가는 한편, 무인기를 통해서도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저택에서 관찰되는 것은 얼굴을 모두 가린 채 빨래를 널러 나오는 여성들뿐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빨래”는 빈라덴 거주지 추정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로 추정한 인원들이 빈라덴의 가족 구성과 일치했던 것이죠.
마침내 2011년 5월 1일.
작전명 ‘넵튠 스피어 (Neptune Spear)’가 실행됩니다
내용은 미 해군 특수부대 ‘DEVGRU’가 파키스탄에 위치한 해당 저택에 침투하는 것,
목적은 빈라덴을 확인하고, 사살하는 것이었습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의미하는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빈라덴은 현장에서 사살되었습니다.
현장에서 수습된 그의 시신은,
추종자들의 성지화 가능성을 막기 위해
아라비아해에 수장되었다고 공식 발표되었습니다
이로써 10년 넘게 이어진 추적은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투입한 비용은 약 6조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 금액은 단순한 작전비용을 넘어,
빈라덴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노와 복수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