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이 걸음마를 시작할 쯤부터 아빠 핸드폰 가죽 케이스에 꽂혀있는 카드를 빼는데 재미가 들려 아빠 핸드폰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아빠는 안돼하면서 핸드폰을 멀리 치우며 장난스레 물어보곤 했다.
단팥빵 카드이쒀~?
마카롱 ^^
우린 제과점을 하며 결혼식도 올리고 하느라 신혼여행도 바로 떠나지 못하고 식을 올린 후 3개월 뒤 휴가철에 맞춰 가게 휴가일정을 잡아서 여행을 가게 됐다. 신혼여행이면서 처음으로 둘이 가는 여행이라 긴장도 잔뜩 했다. 코로나 시기 이전이기도 했고 신혼여행은 꼭 해외로 가고 싶었던 로망이 있어서 괌으로 정하고 2박 3일 일정을 짰다.
말이 2박 3일이지 저녁비행기로 출발해서 새벽에 괌에 도착해 몇 시간 자고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낮에 귀국하는 겁나 짧은 일정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떻게 서든 해외에 발을 디디고 오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타는 밤비행기의 설렘에 비행기 안에서 뜬눈으로 계속 수다 떨며 새벽 두 시쯤 괌공항에 도착했다. 금방 다녀온다는 생각에 캐리어도 끌지 않고 단팥빵의 오래된 배낭에 우리 둘의 옷과 생필품? 만 챙겨 떠났다. 나도 털털한 성격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입국심사에서 캐리어 없이 요즘엔 잘 안 하고 다니는 커다란 노란 배낭을 메고 2박 3일 일정으로 온 우리를 보며 씩 하고 웃던 직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괌엔 택시가 잘 돼있는 것 같았지만 새벽에 도착하는 거라 걱정이 됐던 나는 호텔밴을 예약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왔는데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당황했다. 괌이 참 좋으면서 다행인 건 어딜 가나 한국사람들이 많다는 거였다. 주변에 있던 다른 호텔직원분 같은 한국인에게 물어보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셔서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시간이 은근히 지나자 유유히 괌 현지인 같은 분이 우리 이름을 들고 나타났고 단팥빵의 배낭을 보며 짐이 이게 다냐고 물었다. 우린 이게 다라고 말했는데 그 직원분이 미소 지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직원을 따라 주차된 밴으로 갔는데 엄청 큰 밴이었다. 짐도 없는 우리 둘이 타기에 부담스러운 사이즈라 살짝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은 습도가 너무 높아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어도 우리가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우리의 얼굴은 퉁퉁부은 상태로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재빨리 호텔을 나와 아침을 근처 식당에서 먹고 가까운 두 번째 호텔을 향해 해변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새벽에 잠깐 잘 거라서 저렴한 숙소를 정하긴 했지만 이불까지도 눅눅했던 그곳이 꽤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입구부터 달랐던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 직원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던 두번째 호텔에 도착하자마자부터 우린 여행 온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직원분에게 이름을 말하자 잠시 확인해 보더니 룸업그레이드 해드린다며 로열스위트룸으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축축했던 감정이 다시 바짝 햇볕에 말린듯한 기분으로 똑같이 업그레이드 됐었다.
그렇게 좋은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위해 나왔다. 안내서를 보며 무료 시티투어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가 오자 단팥빵이 먼저 올라탔는데 그냥 타려고 하니 운전기사가 살짝 제지하며 영어로 뭐라고 물어봤다. 난 정류장에 서서 단팥빵의 등뒤를 보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고 있었고 단팥빵은 무료인지 알고 타려던 버스에서 무언가를 물어보니 당황하여 영어로 대답할 문장을 만들고 있을 무렵 급한 운전기사님이 대뜸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했다.
기사님 카드 이쒀~?
우리 아니요..
우리의 대답을 듣고 쿨하게 문 닫고 버스는 떠났다. 우리가 타려던 시티투어버스는 그 뒤에 왔고 그날부터 우린 어디서든 카드 이쒀~?라는 문장만 꺼내면 그때의 추억 속으로 소환되는 마법의 주문이 된듯하다.
나름 관광용품샵에서 기분 낸다고 신중히 고른 단팥빵의 옷 한 벌은 호텔의 식당에서 직원들의 유니폼과 똑같았다. 떠나는 날 아침 아쉽다며 일찍 바닷가로 나가 멀리까지 수영하러 나갔다가 해파리에 쏘여 파리해진 얼굴로 돌아와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행히 호텔에 해파리 전문가? 분인 원주민이 있어 응급조치를 해주시며 다행히 독이 있는 해파리는 아닌 것 같다며 말해주었다.
2박 3일 일정을 알차게 보내며 영어마을에 온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참 우리답게 보내고 온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살다 보니 한 문장으로 모든 기억이 떠오르게 되는 일도 있는것같아 앞으로 우리만의 어록들을 많이 만들어 간직하게 된다면 좀 더 이 여행길이 즐거울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