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가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돼버린 순간.

by Sue


육아를 하기 전의 나는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성격이 무던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 그런데 요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예전보다 화가 많아지고 눈물이 나는 기준점이 낮아졌다. 나의 존재가 사라진 건 절대 아니지만(회사를 다녀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알 던 예전의 나는 아닌 것 같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최근에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 육아를 찍먹으로 해서 힘들다. 독박 육아도 아닌, 그렇다고 온전히 육아를 분담하는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 남편이 육아를 하는 건 맞지만 어째서인지 나만 오롯이 육아의 부담과 짐을 다 진 것 같다. 남편이 아이를 사랑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마치 예뻐만 하는, 마치 애완 인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예뻐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 하지 않는 상태인 것 같다.


내가 아이와 책을 읽거나 놀 때 남편은 노트북(일&유튜브시청)을 하지 않고 아이의 도시락을 싸줄 수는 없는 걸까? 아니면 내가 아이를 위한 반찬을 만들어야 할 때 남편은 아이의 잠옷을 갈아입히고, 이를 닦고 재우는 것을 스스로 해줄 수 없는 걸까?


부부간에는 대화가 중요하고 이런 것들 지혜롭게 남편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사람들은 조언한다. 그게 맞다. 내가 만약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과 여력이 남아있다면 말이지.. 솔직히 나는 지금 남편을 얼래고 잘 구슬려서 사용(?)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같이 키웠는데 왜 이런 것까지 일일이 이야기해야 하나.. 같은 마음도 있다.


한 번은 내가 몸이 너무 아픈데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방광염 및 뾰루지) 침대에서 나와, 아이의 유치원 간식 도시락을 싼 적이 있다. 간식 도시락을 싸고 있는 내 옆에 남편이 나한테 오더니, 도시락 나한테 준비해 달라고 말하지.. 왜 네가 싸고 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분노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냥 감정 변화 없이 작은 목소리로 내가 당신한테 (도시락을 싸달라고) 말할 기운조차 없어..라고 답했다. 그때 당시 나는 정말 남편에게 시킬 기운조차 없었다. 남편에게 일을 시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이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냥 내가 하는 게 편했다. 그깟 도시락, 과일을 잘라서 넣으면 그만이니까. 그 일조차 남편은 시켜야 본인이 했다. 시켜도 바로 하지 않고 저녁 9시, 10시가 되어서야 했다. 그러면 나는 남편이 늦은 시간까지도 도시락을 만들지 않아 불안했다. 다음 날 아침 바쁠 것이 뻔한데 저녁에 도시락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침에 만들어야 하니 내 출근이 늦어질 수 있어서 심리전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가 문제인 걸까? 남편에게 시켰어야 했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이제 유치원을 다닌 지 벌써 두 달이 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닌다. 그 말인즉슨 도시락 싸기는 매일 해야 하는 일상이다. 그것조차 남편에게 시켜야 한다면... 남편은 얼마나 육아를 하지 않는 것일까.


또 한 번은 저녁을 같이 먹는데 두유를 작은 한 팩만 냉장고에 꺼내놨었다. 그리고 두유를 혼자 마시는데 그 모습이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다. 내가 혼자 (두유) 마셔? 이렇게 말했더니 부랴부랴 냉장고에서 두유를 하나 더 가지고 왔다. 나는 아이에게 줄 우유를 달라는 의미였는데 남편은 내 것을 가져왔다. 내가 말을 잘 못 한 건 인지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나중에는 아니, 내 거 말고 아이거를 가져와야지. 하고 내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아이에게 주었다.


남편은 육아를 하고 있어도 나랑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육아를 하고 있어도 아이가 우선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대충 처리하고 마는 마음이 보였다. 아니, 아이가 남편에게 최우선의 대상이 아님을 깨달은 순간이라고 할까.


그 작고 작은 것들이 쌓여서 내 마음이 터져 나왔던 날이 지난 일요일 저녁 10시였다. 평소와 같이 아이를 재우고 옆에 눕는 순간 눈물이 울컥 나왔다. 나도 쉬고 싶은데. 그거 하나뿐이었다. 나도 쉬고 싶은데, 나도 혼자 있고 싶은데. 나는 매일 저녁마다 아이가 감기에 더 심하게 걸릴까 3시간마다 이불을 덮이고 치아가 틀어질까 끊지 못한 쪽쪽이를 입에서 떼내며 버티던 지난 모든 것이 반복되려는 순간 남편의 코골이가 들렸다. 나는 편하게 혼자 자고 있어요-.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침대에서 박차고 소파에 누웠다. 그 순간 집이 너무나 숨이 막히고 갑갑해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나만? 왜 나 혼자서만? 그 생각만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가고 싶어 안방에 들어가는 순간 훈훈한 공기를 느꼈다. 남편이 안방에 레디에이터를 킨 것이다. 나는 레디에이터를 킬 생각도 못하고 근 2주간 아이 이불을 덮어주느라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내 신경이 뚝 끊어졌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나와 감기 걸린 아이보다 본인의 몸이 더 중요했다.


레디에이터를 끄고 안방문을 활짝 열었다. 감기에 걸려 뒤지도록 아프라고.


그리고 차 키를 챙겨서 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차가 남편 차 뒤에 있었다. 남편 차(수동)를 운전하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남편차에 앉았다. 비참했다. 내 차가 있지만 남편 차에 가로막혀서 나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서.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빛도 들어오지 않는 차에 앉으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혼자여서 좋았다. 그런데 나에게 일말의 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건지 남편이 어느 순간 내려와서 무슨 일이냐, 얘기 좀 하자며 말했다. 그냥 나 좀 내버려두어!! 악소리 질렀다. 다행히 아이가 울면서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갔다. 나는 차 문을 잠갔다. 그리고 눈을 붙였다. 빛 한점 들지 않는 차 안이 너무 좋았다. 오히려 차를 타고 나가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길가에서 차를 세우고 잠들 수는 없었기에.


한동안 누워있었더니 몸이 너무 불편했다. 결국 나는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그래도 오래 버텄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안방 침대에 누웠다(남편은 아이방에 있기에) 얼마 만에 혼자서 자는 걸까. 고양이도 나한테 들러붙는 게 너무 싫어서 방문을 닫았다.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는 망고의 애원에도 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잤다는 느낌과 함께 남편이 입힌 아이의 옷을 보고 다시 개 같은 현실에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2주가 넘게 기침&감기를 하는 상황에 남편이 아이에게 입힌 옷이 가관이었다. 아이에게 작아서 누군가에게 물려줄 얇은 가을 옷 한 벌, 얅은 외투 한 벌, 스타킹 2개를 꺼내놨는데 아침에 보니 그 옷을 아이에게 입혔었다. 이 옷을 왜 입혔냐고 물어보니 침대 옆에 있어서 입히라는 것 아니었냐는 대답이었다. 나는 아이 손을 끌고 다른 가을용 옷을 다시 입혀야 했다. 바로 손을 뻗어 옷장을 열면 아이의 가을/겨울용 옷들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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