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by sepr

문득 세상이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도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고

하루는 저물고 해는 다시 뜨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사랑하고

모든 건 제자리를 지키며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에서

조금 비켜서 있었다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나는 조용히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말을 하면 어딘가 틀릴 것 같고

말을 하지 않으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입을 다문 채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로웠고

모두가 내 이름을 불러도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 멀리서 들렸다

나는 자꾸만 속에서 작아지고

점점 더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척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는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고 다짐했던 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숨 쉬는 게 버거운 날들이 쌓여

몸 안에 피로처럼 굳어갔다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어

진심을 삼키는 일에도 익숙해졌고

누가 걱정이라도 해주면

괜히 미안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사라지면

누가 울어줄까

누가 미안해할까

누가 조금이라도 아파할까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냥 또 하루가 지나가겠지

그날의 하늘은 평소처럼 맑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사랑을 고백하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는 듯 잠에 들겠지

나는 그저 조용히 무너지고 싶었다

말 한마디 없이

누구의 위로도 기대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천천히 조용히 아주 깊게

사라짐조차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고요한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 끝에서라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거기서조차

또다시 나를 찾게 될까

그저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는 걸

가만히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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