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다친다

by 문주성

형과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동네 한가운데, 용희 엄마네 집.

그 마당엔 큼직한 자두나무가 서너 그루 서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여름이면 자두는 새빨갛거나 자줏빛으로 익어갔다.

형과 나는 그걸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저 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우리 집 형편엔, 자두 몇 개조차 사 먹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가끔 용희 엄마는 자두를 따서 시장에 내다 팔곤 했다.

장날이 지나면 나무 귀퉁이의 탐스러운 자두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저렇게 맛있게 익은 걸 그냥 바라만 보다니.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낡은 서랍장에서 오래된 동전을 발견했다.

화폐 개혁 전에 쓰이던, 오 십환짜리.

이미 세상에선 쓸모를 잃은 동전이었지만,

그 순간 우리에겐 반짝이는 보물이었다.


우리는 오 십환을 손에 쥐고 용희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라 불렀지만, 사실은 동네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셨다.

왜 ‘용희 엄마’라 불렸는지는 누구도 몰랐지만,

아마도 누군가의 이름이, 그녀를 지켜준 마지막 끈이었을지도 모른다.


오 십환을 내밀 때, 우리는 조마조마했다.

혹시 이게 가짜라고, 장난이라고, 혼나지는 않을까.

하지만 용희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자두를 담아주셨고,

심지어 몇 개를 더 얹어주셨다.


그땐 몰랐다.

그녀가 정말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 주신 건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용희 엄마는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게 오십 원이 아니라, 더는 통용되지 않는 오 십환이라는 걸.

그래도 눈감아 주셨다.

우리의 가난을, 욕심을, 그 어린 애틋함을.


그 후로 우리는 서랍 속의 오 십환이 다 없어질 때까지 자두를 ‘사 먹었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금단의 열매를 탐닉했다고 해야 맞겠다.


어른들이 들일을 나간 틈을 타, 자두 서리를 하기도 했다.

어린 도둑들은 멈출 줄 몰랐다.

그 시절엔 죄책감보단 설렘이 더 컸다.


자두가 다 떨어지자, 눈길은 옆집 살구나무로 옮겨갔다.

문제는 그 나무 아래 방에 노할머니가 계셨다는 것.

이사 온 지 꽤 되었지만, 그분을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도 못 하고 노망까지 났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심했다.

이번엔 내가 직접 나무에 오르기로 했다.

형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바빴고, 나는 혼자 움직였다.


어느 여름날 오후, 살구가 가장 탐스럽게 익은 순간.

나는 산에 가는 척, 동네를 서성이다가 조심스레 살구나무로 다가갔다.


나무는 생각보다 높았다.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나는 잠시 주저했지만, 곧 가지를 붙잡고 올라갔다.

중간쯤 올라서자, 발아래로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조심해야 했다. 가지는 연약했고, 살구는 멀었다.


한 발 더, 몸을 내밀었다.

아래에서 동생이 손짓했다.

“위험해!”라는 무언의 신호.


바로 그때—

들려왔다.


“아가야… 다친다…”


바람 소리인가 했다.

아니었다.

분명하고 또렷했다.


“아가야… 다친다…”


몸이 굳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그 노할머니의 것이었다.


말을 못 하신다던 그분이,

나를 향해 말하고 계셨다.


방 안은 어두웠고, 창가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는 분명히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그 살구를 따지 못했다.

마지막 발을 내디디려던 나는, 그대로 나무에서 내려왔다.

동생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그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옆집 할머니… 정말 말씀 못 하셔?”

“응. 왜?”

“… 아니야.


그날 들었던 목소리는 뭐였을까.

환청이었을까.

무언의 텔레파시였을까.

아니면—

어린 도적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는 찰나,

누군가 보내온 절박한 외침이었을까.



---


“아가야, 다친다.”

그 말은 지금도 내 귓가에 울린다.

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내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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