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칠일째
그대, 내 오랜 친구의 이름으로.
그대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여정은 어느새 고단함을 짊어진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전날 밤 친구와의 술자리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KTX의 포근한 좌석 덕분이었을까.
광주역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좀처럼 기차나 비행기의 장거리 이동 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지만,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몸과 빡빡했던 일정이 겹쳐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차는 평야지대를 가르며 달리고 있었고, 나는 잠결에 깨어 조용히 머릿속으로 일정과 짐을 점검했다.
그때였다.
문득, 무언가 빠져 있다는 감각.
지갑.
지갑이 없었다.
심장이 털썩 내려앉았다.
그 안에는 수백만 원의 현금은 물론, 캐나다에서 신분증으로 사용하는 운전면허증과 입국 시 반드시 필요한 영주권 카드가 들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권은 따로 보관해 두어 분실을 면했다는 것뿐이었다.
광주에서 1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 전날 밤을 함께 보냈고, 아침엔 해장술까지 곁들인 후 광주역에서 기차를 탔다.
그 모든 기억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갑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라진 걸까?
나는 서둘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일 났다. 네 도움이 필요해.”
영주권 카드를 잃었다는 건 캐나다에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재발급에는 길게는 반년이 걸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중대한 문제였다.
친구는 전화를 끊자마자 직장에서 곧장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함께 앉았던 자리를 샅샅이 뒤지고, 광주역 분실물 센터도 찾아가 보았다.
심지어 우리가 함께했던 벤치며 탑승한 기차 좌석까지 확인했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되짚던 나는 문득 승차권이 지갑 안에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적어도 광주역까지는 지갑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차를 기다리며 앉았던 그 벤치.
그곳에서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컸다.
친구는 분실물 센터에 CCTV 확인을 요청했지만, 당사자 본인이 아니면 열람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대전행을 포기하고 다시 광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내가 네 여권이랑 영주권 사본 경찰에 보여줄게. 너 돌아오지 않게 해 볼게.”
그는 내가 미리 보낸 신분증 사본을 들고 경찰 입회 하에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차를 기다리던 승강장 벤치에서 내 지갑이 주머니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고 했다.
그 자리에 누군가 앉았고, 지갑을 발견한 이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다.
그는 한참 지갑을 들여다보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한다.
희망이 꺼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광주역 곳곳을 뒤지던 그는 마침내 그 노인을 찾아냈다.
경찰이 이미 도착해 있었고, 노인은 지갑을 손에 쥔 채 수십 분째 망설이고 있었다.
경찰은 말하길, 내가 원한다면 노인을 ‘분실물 무단 점유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경솔한 건 제 잘못입니다.
제 실수로 누군가의 마음에 물욕이 일게 했다면, 탓할 사람은 저지요.
그분을 처벌하지 말아 주세요.”
그 말에 경찰은 노인을 훈방 조치했고, 지갑은 아무것도 빠짐없이 온전히 내게 돌아왔다.
나는 지갑을 돌려받기 위해 광주로 가려했지만, 친구가 먼저 말했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너는 대전 일정 마쳐. 내가 달려갈게.”
그렇게 그는 세 시간 넘게 운전해 대전까지 와주었고, 우리는 서대전역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무사히 일정을 마쳤고, 지갑도 되찾았고,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생긴 것이다.
그와의 인연은 군대에서 시작됐다.
그는 나보다 다섯 달 먼저 입대한 선임이었고, 처음엔 말도 쉽게 붙일 수 없는 선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 그에게 말했다.
“전, 표광희 일병님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날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
“내가 너랑 왜 친구를 해야 하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대하면 제가 한 살 많아 형이지만, 지금은 당신이 선임입니다.
지금 친구가 되는 게 서로에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제안이었다.
그는 말없이 자리를 떴고, 십여 일이 지난 후 나를 다시 불렀다.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다만, 딴 사람한텐 비밀이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그 인연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있다.
돌이켜보면, 지갑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내가 잃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그리고 그 신뢰를 지켜준 한 사람의 진심.
그것이 내 여정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그날 군대에서, 감히 친구가 되자고 말했던 그 무모한 용기.
지금 생각하면, 친구의 성실함과 진중함에 끌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대, 친구 되기를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