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자리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이 자리에 있다는 건 곧 내가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이색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14일 연속으로 일하고 14일 연속으로 휴가를 누리는, 캐나다에서는 제법 일반적인 근무 형태 속에 살고 있다.
큰 유리창 너머로 새로 마련된 나무 데크가 보이고, 그 뒤로 넓진 않지만 싱그러운 잔디밭이 펼쳐진다. 뒷벽에는 화려한 화분 세 개가 걸려 벽을 장식하고 있다. 이 자리에 앉으면 바람의 속삭임마저 들리는 듯하다.
어느 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담장 위에 오래 머물렀다. 몸집은 참새보다는 크고 까치보다는 작았으며, 마치 주황색 목도리를 두른 듯한 인상이 인상 깊었다. 이름을 찾아보려 검색해 보았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그 새는 주로 새벽에 찾아왔다. 꼭 한 쌍이 함께 다니는 게 특징이었고, 담장 위를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오래 머무는 걸 보면 이 자리가 마음에 든 듯했다. 마치 새집을 구하러 온 구매자처럼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혼자 놀다가 이내 친구를 불러왔다. 애정 어린 몸짓과 다정한 울음소리로 미루어 친구라기보단 연인 같았다. 옆에 꼭 붙어 노는 모습이 얼마나 정겨웠던지. 마치 “이 집 어때?” 하고 설명하며 애인의 허락을 구하는 듯했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보내더니, 하루는 다툰 듯 서로 거리를 두고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꼭 사람 같았다.
결국 그들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나무 아래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새들도 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여유를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갑자기 까치 몇 마리가 나타나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울부짖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목도리 새 한 쌍은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남은 한 마리는 끝내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어쩌면 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베란다 문을 열고 소리를 질러 까치 떼를 쫓아냈다. 얼마 후, 떠났던 한 마리가 돌아왔지만, 둥지 아래에서 오랫동안 슬픈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통곡이었다.
나는 차마 보기 싫은 마음을 꾹 누르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한 장면은 참혹했다. 목도리 새는 까치들의 공격을 받다 죽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새의 다리에 비닐이 감겨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인간이 남긴 쓰레기를 다리에 걸친 채 돌아왔고, 좁은 둥지 안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까치들의 표적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다른 새는 도움을 청하러 떠났고, 그 사이 한 생명이 무참히 희생된 것이다.
한 마리 새의 죽음. 그 원인은 결국 인간이었다.
우리는 일상 속 무심코 버린 작은 조각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그 행복했던 새를, 나는 조용히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 이름 없는 그 새는 오늘도 이 마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함께했던 그 자리, 그 나무 아래를 홀로 맴돌며 애처롭게 노래한다.
그것은 어쩌면, 목도리새의 마지막 노래.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에서, 끝내 떠나지 못한 이의 노래다.
그리고 그 슬픈 노래는 오늘도 내 마음 한편에서 잔잔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