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시와 대통령 시계

여행둘째날

by 문주성

여행 둘째 날이었다.

공항에서 급히 꽂은 유심 때문인지, 휴대폰이 결국 먹통이 되었다. 초행길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것이 사라지자 낯선 도시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포천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 안.

어둡게 잠긴 화면을 내려다보던 나는 우연히 버스 안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걸 발견했다. 그 순간이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가까스로 친구에게 사정을 전할 수 있었고, 점심 약속의 희망이 다시 생겨났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택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정갈한 검은 정장, 반듯한 걸음걸이,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그 환한 미소. 시간의 강을 건너왔지만 그의 미소는 여전히 중학교 운동장에서 뛰놀던 그때 그대로였다.


그는 지금 정부의 높은 자리에 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사람.

중학교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친구.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만점을 받고 들어간, 그야말로 눈부신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탁월함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가볍게 감쌌고,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방법을 아는 드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친구 덕분에 많은 첫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펜팔이란 걸 해봤고, 서울대학교 앞 그의 자취방에도 놀러 갔으며, 군 생활하던 서울 공항에도 찾아갔다. 친구의 결혼식에 울산이란 도시에 가본 것도 처음이었다.


아마 그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부적 하나처럼 글을 쓰게 된 시작점에 그가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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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성의 시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중학교 2학년,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반을 여덟 개 조로 나누어 수업마다 경쟁을 붙이셨다. 국어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시 쓰기와 발표를 조별로 진행했다.


나는 억지로 시를 썼다. 조장이었기에, 억지로 발표도 했다.

여리고 조용했던 나는 언제나 무색무취에 가까웠고, 어쩌면 그래서 조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눈에 잘 띄지 않아서, 편했을 테니까.


그래서 더더욱 창피했다.

내 글이, 내 생각이 사람들 앞에 서게 되는 일이.


그날, 한 친구의 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선생님이 물으셨다.

“이 시로 정할까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그 순간, 그 친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 시도 좋지만, 보래매반 문주성의 시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의 한마디는 내게 하나의 구원이자 어리둥절함이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손을 들어 투표가 이루어졌고, 놀랍게도 내 시가 뽑혔다.

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친구의 신뢰에 대한 인기투표였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부끄러웠다.


나는 『주홍글씨』라는 책을 상으로 받았다.

독후감을 써서 학교의 큰 상도 받았고, 독서 발표회에 나가 『주홍글씨』를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면, 그날 친구가 손을 들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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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시계, 그리고 그 미소


그는 공주사대부고로 진학했다.

그 학교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과 담을 마주하고 있다.

친구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이 바로 나태주 선생님이다.


어느 날, 나태주 시인과 그 친구가 버스에서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은 참 좁고 그래서 더욱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 만의 재회였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근처 한정식집에서 우리는 조용히 마주 앉아 서로의 시간을 꺼내 보였다.


나는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반가웠고, 그저 그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때보다 훨씬 깊어진 눈빛, 더 단단해진 어깨.

왜 그가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자리에 있는지, 그제야 알 것도 같았다.


헤어짐의 순간, 그는 비서에게 무언가를 준비시키더니 내게 선물을 건넸다.

그것은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 받는다는 대통령 시계와 대한민국 배지였다.


“너, 시계 안 차고 왔더라.”

그의 한마디가 오히려 더 큰 선물 같았다.

서둘러 출국하느라 미처 시계를 차지 않고 온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는 어느 큰 도시의 행정부시장으로 있다.

나는 여전히, 아주 특별한 날에만 그가 선물한 대통령 시계를 찬다.

그 시계에 대통령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이, 내 자랑스러운 친구가 내게 건넨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을 따스하게 보듬는, 존경받는 훌륭한 행정가가 될 사람이다.

아니, 이미 그러하다.


나는 바란다.

앞으로도 그가 그 미소를 잃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기를.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내가 그의 이름이 새겨진 대통령 시계를 차게 될 날이 올지도.


*(친구가 공직에 있는 관계로 이름을 밝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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