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의 밤, 순대 그리고 우정

2023년 4월 20일

by 문주성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제필이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우리 모두, 특히 세진을 비롯한 친구들은 깊은 탄성을 내질렀다. 봉투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순대가 들어 있었다. 열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순대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첫 입을 베어 물었다. 쫄깃한 순대와 함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찡한 울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마지막 한 점까지도 아낌없이,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내가 소속된 수송부는 군기가 엄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더욱이 내가 신참일 때는 그 유명하다던 88년도 군번의 사람들도 남아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더 좋아했고, 몇몇 선후임들과는 계급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친구처럼 지냈다. 그중 한 명이 세진이었다.


세진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1호차 운전병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수려한 외모에 반듯한 말투, 예의 바른 태도까지—군복 너머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빛을 발했던 순간은 축구 경기였다. 그는 우리 소대를 넘어 연대 본부에서도 슈퍼스타 같은 존재였다.


제대 후, 그는 고향인 포천으로 돌아가서 삼계탕 가게를 했고, 나는 일본 유학 후 광통신 부품을 만드는 벤처기업에서 영업팀장과 운 좋게 스미도모전공의 한국대리점을 하다가 돌연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 캐나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30년 넘게 친구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번 한국 방문은 가족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11박 12일의 일정 속에서 누구를 먼저 만날지 고민하다가, 나는 세진을 첫 번째로 만나기로 했다. 내 방문 소식을 들은 그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고,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라고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회”라고 답했다.


당일 그는 새벽같이 포천에서 가까운 구리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싱싱한 회감을 종류별로 사고, 각종 해산물을 챙겨 공항으로 왔다. 세진은 삼계탕집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내게 집중하기 위해 가게 일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공항에 차를 끌고 온 것이 처음이라, 내가 있는 제2터미널이 아닌 제1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서는 공항에 누구를 마중 나온 것 자체가 커다란 용기를 낸 셈이었다..


그와 만난 것은 무려 10년 만이었다. 물론 카톡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공항에서 서로를 마주한 순간, 우리는 말없이 한동안 껴안았다. 반가움이 벅차올랐다.



포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마치 수다스러운 여학생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지난 10년간의 삶, 가족 이야기, 추억들, 그리고 별것 아닌 소소한 농담까지도 유쾌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저녁노을 아래, 우리는 다시 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세진은 나를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커다란 식당으로 데려갔다. 이미 한쪽 공간을 예약해 두었고, 그곳에는 세진의 몇 명의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세진은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에 “모월 모일, 캐나다에서 친구가 오니 모두 참석하라”라고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많은 친구들이 "캐나다 친구"라는 말에 백인 캐네디언을 떠올렸다고 한다. 외국인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모임에 왔던 그들은, 정작 나를 보고 살짝 당황했다고 한다.


나는 세진에게 물었다.

"우리 둘만 만나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렀어?"


세진은 웃으며 말했다.

"너를 내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세진에게 한참 부족한 친구일지도 모른다. 군대에서도, 그 이후의 삶에서도 그는 언제나 반듯하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그에 비해 모난 부분도 많았고, 어쩌면 그만큼 당당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고맙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세진의 기대에 걸맞은 친구였을까? 그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람이었을까?


술잔을 기울이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세진의 친구들은 모두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조금은 그 마음을 받아들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허물없이 친구가 되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잔을 기울였다. 세진의 친구 중에는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전 축구선수도 있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세진이 군대에 있을 때 축구를 하면 슈퍼스타였는데, 포천에서는 어때?"


그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진이 뭐... 개 발은 아니지."


그 말에 우리는 모두 뿜고 말았다. 우리 부대의 슈퍼스타가 국가대표 상비군 앞에서는 ‘개 발’ 취급을 받다니!



술이 거나하게 취해갈 무렵, 재필이란 친구가 내게 물었다.

"첫 번째로 먹고 싶은 게 회라는 건 알겠는데, 두 번째는 뭐야?"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순대."


캐나다에서는 한 번도 간, 허파 등이 들어간 진짜 순대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포천은 시골이라 밤 10시 30분이면 순대 가게가 모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때 이미 시각은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자 제필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오늘 처음 본, 캐나다에서 온 친구를 위해—아니, 친구의 친구를 위해—이미 문 닫은 가게의 문을 두드려 주인을 깨웠고, 따끈한 순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내가 뭘 했다고, 이런 대접을 받는 걸까.



그날 밤, 포천의 친구들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한입 한입 순대를 베어 물 때마다, 30년 전 군대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렇게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우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 배관공 이야기 - 삶의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