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십여분째 난 화장실의 손잡이를 부여 잡고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불쌍한 상황에 처한 나를 도와주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한번만!!..
밖에서 담당 진행요원인 것 같은 사람이 물었다.
“문상 괜찮아? 이제 곧 시합이예요”.
그리고는 멀리 화장실 밖에서 낭낭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제34회 아사히무라 번지 점프 대회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수 여러분께서는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망치자니 차가 없을뿐더러 화장실 앞은 온통 행사 준비 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고 운이 좋아서 화장실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차로 2시 30분의 거리버스도 없는 산중에서 어떻게 기숙사까지 돌아간단 말인가…
그렇다고 다리에서 뛰어 내리자니 평소에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번지 점프는 커녕 아파트도 2층 이상 살아본 적이 없는 나였다. 더구나 번지 점프도 아니고 번지 점프 대회라니….
조금 있자니 화장실 안이 왁자지걸 떠들썩했다. 슬며시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몇몇의 번지점프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자신들만의 독특한 의상들로 갈아 입고 있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대회 이야기를 나누거나 농담도 섞어서 말하는 것으로 봐서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의 사람들은 아닌듯 싶었다.
왜 하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 것인지 도망치지도 못하게.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지 이제는 진행요원인 것 같은 사람이 화장실의 문을 두드리며 내가 괜찮은지를 물으며 빨리 나오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오오! 주여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벌써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 나는 유학생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어느 시골에 존재했고 학교의 기숙사에서 고헤이(公平)란 일본의 동쪽 바다를 품고 있는 센다이로부터 공부하러 온 친구와 같은 집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은 4층 기숙사의 2층에 있었는데 외부에서 보면 시멘트로 만든 삭막한 아파트 같았지만 내부는 다다미방으로 꾸며져 있는 다소 푸젼식의 그건 공간이였다.
외국인으로서 비록 낯설은 공간이였지만 다다미에서 나오는 은은한 풀내음만으로도 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마치 시골 마을에 와 있는 향수를 언제든 느낄수 있어서 였다.
둘이 살기에는 다소 넓은 공간이여서 아이들 한 둘 있는 젊은 신혼 부부가 살기에도 부족함이 없겠다 생각이 되었다. 내부에 방이 2개에 넓은 거실에 세탁기도 있었고 샤워실도 2개나 있어서 고헤이와 나는 비록 주방을 같이 쓰고는 있었지만 서로의 독립된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난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의 이런 음식 저런 음식을 만들곤 했는데 고헤이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친구이고 집에서 전혀 음식 만드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지 도통 음식만드는 재주가 없었다. 매일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식사는 해결하는 것을 보고서 괜찮으면 내가 만드는 음식을 같이 먹자고 권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했다. 음식은 내가 만들고 설걷이는 고헤이가 담당하는 방식이였다.
매운 것을 못 먹는 고헤이를 위해서 우리는 한국음식의 매운맛 레벨을 높여가며 이 음식 저 음식 만들고 먹어가며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정보다는 우애였는지도 모른다.
고헤이는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는 친구라서 어떤 것을 만들어 주어도 잘 먹는 너무도 고마운 친구였다.
한국식 재료가 부족한 탓에 일본식 재료에 한국식 음식을 만들어도 언제나 “오이시이 오이시이” “니상 스고이(형 굉장한데)”를 연발해주는 좋은 동생이기도 했다.
우리와 현관문을 맞이한 곳에서 지금에 와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영어를 가르치는 어렴픗하게 케빈이였던 미국 교수가 살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나를 평가하는 사람인지라 굳이 기숙사에서까지 친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 그 교수와 친했더라면 지금의 내 영어가 이 정도로 처참하지는 않았을터인데 라고 가끔 생각하곤 한다.
처음에 케빈이 학기 중에 부임하고 너무너무 기숙사 생활이 심심했던지 몇 번 또는 그 이상 우리의 방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미국적인 무엇인가를 들고서
매일매일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만를 쓰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그를 위해 다시 영어를 써야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캐빈의 염소를 닮은 듯한 인상에 가는 목소리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시덥지 않은 동양 친구들의 따돌림에 한참을 왜롭게 지내던 케빈은 어디서 새로 사귀였는지 이상한 친구들을 지속해서 기숙사로 불러들였다. 히피족을 연상시키게 하는 복장을 한 다소 특이한 사람들 일색이었다. 생긴것 이상으로 이 교수 취향이 독특하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점점 우리 생활의 영역에서 케빈이 지워지고 있을 즈음 그가 우리 현관문을 두드린 것이다. 내일 아사히무라라는 곳으로 가면 공짜 점심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라이드 해줄터이니 걱정 말라며 뒷말로 뭐라뭐라 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고헤이와 나는 마침 내일 토요일이라서 아무런 스캐줄도 없던차에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 것에 대해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했다. 뭐 특별한 일 있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다음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아사히무라로 향했다. 도시에서는 몰랐는데 도심을 벗어날수록 농익은 가을이 다가와 있었다. 산 초입부터 온통 단풍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사히무라는 내가 거주하는 도시에서 2시간 반의 거리에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큰 산의 수려한 계곡에 존재하는 마을 이름이였다.
산중으로 들어들수록 일교차가 심해서 일까 달력에서나 볼수 있는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뿜어내곤 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고혹적으로 물든 단풍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우리는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모양이였다. 그런데 예상했던 마을은 보이지 않고 멀리서 커다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였다.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산속의 다리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있었고 꽤 많은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축제(마쯔리)인가 짐짓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덧 우리는 다리까지 다다랗고 일부 인원이 다리를 통제하고 있었다. 멈춰진 우리 차로 누군가가 다가와서 캐빈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웠고 우리의 차량만이 다리를 건너서 마을 쪽에 휴게소 같은 곳에 주차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식당을 안내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테이블 위에는 고헤이와 나의 이름이 씌여져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대했던 것 보다도 더더욱 근사한 아니 한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
마쯔리는 아닌것 같고 한적할것 같은 마을도 아닌 그곳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멀리 다리의 반대편에 카메라들도 보였던지라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종업원에게 오늘 이곳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종업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와 고헤이는 젓가락를 내려놓고서 멀뚱멀뚱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오늘은 아사히무라 최고의 행사인 번지점프대회가 있는 날로서 그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는 사람은 이 번지 점프대회에 참가한 선수이거나 심사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선수로 참가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럼 우리가 번지점프대회에 선수로 참가하고 있단 말인가!?…어떻게 그런일이!!..
아무리 케빈을 찾아도 그를 목격할수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식사전부터 그는 시야에서 사라져 있던 상태였다.
이야기는 그랬다. 번지점프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던 두명이 개인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타로 쓰일 참가자를 찾던 중에 케빈을 통해서 우리가 낙점된 것이였다.
케빈을 원망할때가 아니였다. 빨리 자리는 뜨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되어서 식당 문을 박차고 나오려다가 진행요원들이 서류에 무엇인가를 적을 것을 권하기에 서둘러 도망친 곳이 화장실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찾아간 곳의 문고리가 고장나 있어 문고리를 부여잡고 있던 것이였다.
악마가 내 삶에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고 느끼며 한참을 화장실의 문고리를 꼬옥 잡고 있는데 이번에는 밖에서 고헤이가 나를 설득하고 나섰다. “형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없어요” “어서 나와서 서류에 사인하고 옷이나 갈이 입어요”.. “높이도 겨우 34미터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TV에 나온데요. 그것도 NHK에요"…"전 부모님께 이미 공중전화로 전화도 했어요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아득하기만 했다. 다리 아래가 계곡이라고만 생각했지 34미터나 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좋아하는 고헤이의 흥분한 목소리로 판단하건데 이미 지원군은 기대할수 없는 상태였다.
녹음된 것인지 실제 연주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행사를 알리는 연주소리와 사람들의 와….하는 함성과 더불어 장내 아나운서가 대회의 시작을 알렸고 나는 진행 요원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화장실에서 끌려 나오다시피 했다.
고헤이의 등에는 7번이라는 등번호와 더불어 그 당시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였던 옴진리교의 마쯔모토 치즈오 교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도 무엇이가 분장을 하고 뛰어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없었는지 나는 아무런 분장도 없이 아나운서가 유학생이라는 것만 강조시키고 뛰어내리기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PD인듯한 사람이 진행요원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의 등에도 8번의 등번호가 매달리고 난 꼼짝없이 번지점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녹화방송이긴 했어도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에서 방송하는 대회이니 만큼 자전거를 타고 뛰어 내리는 사람, 일본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사람, 심지어는 비키니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 선수들 속에서 27세의 한국 청년은 어안이 벙벙한채로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참으면서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나운서가 무엇을 물을까 일본어 발음이라도 틀리면 안되는데 걱정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헤이가 먼저 옴진리교 교주를 꼭 잡게 도와달라는 일본 경시청장이나 말할듯한 메세지들을 남기고 떨어졌다.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의 인터뷰와 떨어질때의 퍼퍼먼스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면서 채점하고 있었다. 엷은 미소와 더불어 담담히 떨어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고헤이는 기숙사에서 보여지는 꼬꼬마가 아니라 상남자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뉴스에 얼굴이 비추어진 사람도 번지점프대회의 우승자가 아니라 고헤이가 되었다. 평소에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다고 하더이 고헤이는 그날 하나의 소원을 이룬것이였다.
아나운서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의 관심은 오직 34미터 아래에 떨어져도 사람이 살수 있는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난간 아래로 눈길을 돌리니 협곡 사이에 다리가 있던 것이였고 그 아래로 푸르디 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군데군데 넑직한 바위들이 있어서 마치 그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아나운서의 인터뷰와 관중의 환호성을 뒤로 한채 난 생전 뜻하지 않았던 번지 점프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억지로 떠밀려서.
이제 꼼짝없이 죽고마는구나 이런 마음으로 뛰어 내린 것 같다. 하강의 속도가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순간 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죽지는 않았다고 느껴서일까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좀더 멋지게 할 것 그랬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조금전만 하더라도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행이 아무 사고 없이 안전로프와 일체가 되어서 출렁이다가 보트에 내려졌고 진행요원은 나를 강가의 기슭에 내려 주었다.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긴 안도의 한숨이 밀려왔다.
34미터 위로는 여전히 대회의 열기가 가득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로고자하는 뭇 생명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34미터 아래로는 가을빛을 받아서 찬란하게 빛나는 고요한 강이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경기가 끝날때가지 오래도록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에너지를 다 소비해서 박차고 올라갈 기운이 없었던것 같다..
살면서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올때는 생각하게 된다. 악마가 또 내 인생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
경기가 끝나고 헛헛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케빈이 나타났다. 웃으며 “너 오늘 최고였어”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