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실망으로 바뀌고 서서히 절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런연유로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길게 느껴졌다. 이제 오롯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은 몇없을 정도였다.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실직된 가장들을 초청해서 저녁을 준비해 주시고 그들을 위로하고 기본적인 양식인 쌀을 선물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어제도 한푸대 오늘도 한푸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이 겨울이 얼마나 길고 험한런지!!
용접사로서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는 세계 정세의 회오리속에 무참히 박살나고 있었다. 무엇인가 해야했다. 가까스로 정착했다고 생각되었던 에드먼턴에서 밀려나면 한국에 돌아가거나 또 다시 이민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나는 쌀알만큼 그 불안은 점차 증폭되어서 이제는 그런 사치스러운 감상에만 젖을때가 아니고 어떠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취업에 대한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던 끝에 첫직장에서 나에게 영어를 가르켜주던 Jesse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언뜻 사귀고 있는 애인의 아버지가 포트맥머리의 어느 회사에서 포맨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말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단, 1%의 희망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쫏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한 셈이였다.
그는 이미 포맥으로 주거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정착해 있으므로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셈이였다.
오랫만의 전화에서 그는 시기가 좋지 않음을 나에게 설명했지만 나는 멈출수 없었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나는 포맥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Jesse가 나를 구원해줄것만 같은 그런 착각에 쌓여서 모두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포맥으로 향하고 있었다.
포맥은 내가 살고 있는 에드먼턴에서 북쪽으로 500킬로 정도 떨어진 오일 필드이 중심 도시였다. 당시 내 주변에는 그 누구도 그쪽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없어서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던것 같다.
새벽부터 무던히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길을 분간하지 못할만큼의 눈으로 도로의 중간 중간에서 돌아가야 하나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더불어 에드먼턴에서 마이나스 25도에서 시작한 온도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마이나스 40도에 가까운 온도을 보이고 있었다.
출발하기전 포맥으로 올라가다보면 중간에 약200킬로 정도에 주유소, 민가도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휴대폰도 연결이 되지 않는 구간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사전에 휘발유를 충분이 보충해 둘 것과 여분의 재고를 준비해 둘것 그리고 중간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강도일수 있으니 절대로 태워줘서는 않된다는 말들도 들었다.
경제적이나 심리적인 상황은 심각했지만 눈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북국으로 향하는 드라이브는 호젓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광할한 대지에 폭설로 인해 펼쳐진 풍광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구간에서부터인지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던 차들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세상은 오로지 순수만이 가득한것 같았다. 차안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차창 밖의 설경은 마치 천국에 여행이라도 가는 기분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캐럴을 흥얼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뭔가 작은 물체가 보였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동물이나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실외온도는 여전히 마이나스 38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분명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도로의 앞과 뒤 100킬로미터에 사람이 살지도 않는 곳에 그리고 이 추위에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것은 이상함을 넘어서 신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순간 캐나다에서 오래 사신분들의 충고가 들려왔다. 절대로 사람을 태워주워서는 안된다고.
마음속에서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가 칼 아니 총을 품고 있을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면 다른 종류의 폭력을 내게 행사할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차량도 한대 없는 이 첩첩산중에 그것도 마이나스 38도에 나라도 그를 태워주지 않는다면 그는 얼어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점차 그가 가까워지고 그가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의 머리는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라고 명령하고 있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가 서 있음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차에 올라탄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추위에 당상 시간 노출된 탓이였으리라.
이윽고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서먹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First nation(일명, 인디언)이였다. 50대중후반으로 보이는 주름이 깊게 파인 다소 고집스러워 보이는 중늙은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윌리엄이라 말했다.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윌리엄이 있을터인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영국왕실의 윌리엄 왕자가 생각나면서 길에서 히치하이킹 하는 캐나다의 윌리엄이라니 하는 생각이 나면서 키득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저녁에 포트맥머리에 열리는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고 말했다. 내가 그 나이에 차도 없는냐는 구박 아닌 구박을 하자 그는 길거리에서 3분만 걸으면 다 태워주는데 굳이 불편하게 차를 끌고 다닐 이유가 없다면서 오늘도 내차가 길에서 처음만난 차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의 질문이 거의 끝나갈즈음 아니 내 영어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을즈음 역공과도 같이 그의 질문의 쏟아졌다.
이 추위에 그것도 크리스마스의 이브에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것 같은데 너는 어디를 가는 것이냐라는 그의 질문을 시작으로 마치 경찰서에 취조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내가 왜 지금 포트맥머리에 가는지에 대해서 나름 소상하게 설명하고 다음에 질문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가 혀를 끌끌차는게 아닌가. 그의 말에 따르면 네가 걱정해야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고 나라고 말하며 듣자하니 너는 영주권이 없고 직업도 없고 게다가 애들은 어리고 아내조차도 직업도 없고 뭐하나 제대로된
것이 없다고 말하며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무도 의지할곳 없는 곳으로 이력서를 내러가는 네가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100% 사실이기에 어떤 반박도 할수가 없었다.
자신은 정부에서 따박다박 돈이 나와서 아무일하지 않아도 평생을 놀고 먹을수 있는데다 이제 자녀들이 성장해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 책임도 없고 사냥과 낚시가 평소의 취미이고 특히 아들과 사위는 포맥의 어는 샆인가에서 포맨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설명이 뛰다랐다..
네가 원한다면 특별이 아들과 사위에게 너의 취업을 부탁해 보겠노라 말했다.
더불어 그는 말했다.
First nation이야말로 이땅의 주인이며 잠시 서양 사람들이 총칼로 위협하여 땅을 빼앗고 주인행사하고 있지만 무력으로 흥한자 무력으로 망할것이며 언젠가는 지리멸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금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는 날이 올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처음 차에 올랐을때에는 그를 보면서 물에 빠진 생쥐를 연상케 했는데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제 그는 세상의 담론을 나에게 쏟아내고 있었다..그러면서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해 주겠다고 말하며 인디언의 언어로 주술을 행하는 것 같은 주문을 외우고 우리의 만남은 끝을 맺었다.
평생을 만나도 무덤덤한 사람이 있는 반면 짧은 순간일지라도 오랜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이 아침 무던히도 눈이 내리고 있다.
윌리엄은 그때 어떤 주문을 한것이였을까 궁금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