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증기 속의 추억
며칠째 영하 3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날, 차마 딸아이를 버스에 태울 수 없어 차를 끌고 학교로 향한다.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어제 내린 폭설 탓인지 도로는 마치 주차장을 연상케 한다. 옆에서 딸아이가 구시렁거리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느긋하다. 이런 날엔 아무리 서둘러도 지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매연과 함께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어, 마치 목욕탕 안에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수증기로 가득한 목욕탕 말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행정상으로는 충청남도 공주시지만, “양반의 고장”이네 “교육의 도시”네 하는 수식어들 덕에 고향을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차령산맥 언저리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하는 그런 곳이다. 두메산골이라 해야 어울릴 곳으로, 어릴 적엔 등잔불 아래서 숙제를 하다 머리카락을 태우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실제로 등잔을 써보지 않은 세대에겐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친구들 집에는 ‘전기’라는 것이 있어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히며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에 태어났지만, 경험만 놓고 보면 마치 6.25 전쟁 세대나 일제강점기 세대 같았다.
등잔불을 사용하다가 제삿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양초를 두세 개 켜곤 했는데, 그 밝음이란 마치 심봉사가 두 눈을 뜬 것 같은 감격이었다. 지금처럼 샤워실에 가서 샤워기만 틀면 물이 나오는 시대에 사는 이들에겐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겨울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는 지금은 대설을 지나 동지 무렵일 것이다. 김장은 이미 마쳐놓은 상태라, 게으른 농부에겐 평양감사도 부럽지 않은 긴 방학 같은 시기고, 부지런한 농부에겐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즈음이면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일은 새해맞이 목욕이었다. 요즘처럼 샤워기를 틀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쉽게도 나처럼 아름다운 추억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활이지만, 겨울 목욕이라는 건 인류 역사 150만 년 가운데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호사였을지 모른다. 선사시대 사람들에겐 겨울철 목욕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역사 시대 이후에도 권력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을 것이다.
로마 제국에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해도, 모두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막이나 초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니, 일반 백성들에겐 여름철 시냇가나 우물에서 하는 등목이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거사’였다. 머리 감는 날을 미리 정해서 지켰을 정도니, 그만큼 목욕이란 번잡하고 귀한 일이었던 것이다.
전기도 없던 시골이었으니 살림살이의 궁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건, 집집마다 커다란 가마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마솥의 크기와 상태만 봐도 그 집안의 형편을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다들 자기 집 형편보다 한 치수쯤은 큰 가마솥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사회초년생이 그랜저를 몰고 다니는 꼴이랄까.
겨울철엔 두세 번쯤 가마솥 가득 물을 데워서 널찍한 대야에 붓고 목욕을 했다. 온도를 맞추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찬물과 뜨거운 물을 몇 번씩 조절하다가 마침내 욕탕 안에 들어가면, 비록 꼬마였지만 세상 시름도 학교생활의 고단함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아궁이에서는 붉은 장작불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은 싫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긋이 그 불을 바라보곤 했다. 위로는 시커먼 가마솥이 연신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고, 수증기는 천장으로 올라가 그을음 잔뜩 묻은 나무 들보를 타고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물이 미지근해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때 고민이 시작된다. 숙제하고 있는 동생을 불러 뜨거운 물을 부어달라 할 것인가, 아니면 벌거벗은 채로 나와 직접 가마솥에서 대야로 물을 옮길 것인가. 그 시절 시골집들은 웃풍이 심해, 물 밖으로 몸을 조금만 내밀어도 금세 한기가 느껴지곤 했다.
나는 대개 동생을 불렀다.
"동생아!"
숙제하다 말고 나오면 심통이 났는지, 아니면 만화를 보다가 억지로 불려 나와서 그랬는지, 동생은 뜨거운 물을 한가득 부어버렸다. 이번엔 너무 뜨거워 대야에 발조차 담글 수 없었다. 식을 때까지 그 차디찬 웃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을음으로 거무튀튀한 초가집 부엌 천장 사이로 새하얀 김이 피어오르며 온 부엌을 휘감을 때면, 마치 무릉도원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아궁이의 장작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이란 단어가 이럴 때 쓰일 수 있는 거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목욕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하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결국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고서야 순한 양이 되었던 기억도 있다. 어릴수록 그랬던 것 같다. 시나브로 시간이 흘러 사춘기에 접어들면서야 내 몸에 관심이 생기고, 장작불과 수증기가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목욕은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사람의 뇌는 과거의 기억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 번잡하고 고단했던 시절의 목욕도 지금 생각하면 예쁜 스틸컷처럼, 추억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