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그리고 IMF의 한복판에서

럭스텍 이야기 3

by 문주성

“면접은 어땠어?”

누나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사기기업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광통신 부품을 국산화한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1998년 7월 말, IMF 외환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한국.

나는 일본에서 학교를 마치고 귀국한 지 막 석 달이 지난 상태였다.

귀국 직후 일산에 있는 누나 집에 얹혀살며, 서울역 근처 디자인 학원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었다.


취업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일본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기술 하나는 익혀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포토샵과 일러스트였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배워두고 싶었다.


예상보다 재미도 있었고, 강사의 칭찬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일러스트 수업은 하루만 빠져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진도가 빨랐다.

하루하루 몰입하며 지내던 그 무렵, 서울역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 “럭스텍이라는 회사입니다. 중소기업청에서 귀하의 이력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면접 가능하신가요?”




이력서를 낸 기억도 없었기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기인가? 다단계인가?

하지만 회사 이름에서 묘한 신뢰가 느껴졌다.

전혀 엉뚱한 곳은 아닐 거라는 직감 같은 것.

그렇게 면접 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갈까 말까 고민했다.

마침 학원도 재미있었고, 그날 수업은 중요했다.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찾아 연락하는 회사라면, 별 볼 일 없는 곳일 수도 있다는 의심도 들었다.

설사 붙는다고 해도, 왕복 서너 시간이 걸리는 거리.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결국 면접 당일이 되었다.

나는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일산에서 올림픽공원 인근 면접장까지 교통수단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괜히 늦을까 봐 서둘렀다.


일찍 도착한 나는 회사 맞은편에 펼쳐진 올림픽공원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서울에 이렇게 큰 공원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서울은 늘 삭막하고 낯선 도시였는데, 이 공원은 달랐다.

넓게 뻗은 산책길과 정돈된 숲길, 잔잔한 연못, 조깅하는 사람들.

그 풍경 속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서울에도 이런 여유로운 구석이 있었구나.’

그 순간, 이 낯선 회사에 대한 인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공원과 어깨를 맞댄 회사 건물을 다시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도심 한복판이 아닌, 이런 공원 옆에 자리를 잡은 회사라면 뭔가 진지한 일을 하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나 다단계는 아니겠지.’

괜히 그런 환경에서 일하게 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상상도 스쳤다.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은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그리고 면접.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10분 동안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했고, A3 크기의 8절지에 ‘IMF 극복 방안’을 주제로 글을 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쯤이면 끝인 줄 알았는데, 사장과 부사장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사기나 다단계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일반적인 사기업 분위기도 아니었다.

민간기업 같지만 뭔가 공공기관 같은 정서가 스며 있는 묘한 느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회사는 도대체 뭘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절박했을 것이다.

IMF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사람을 뽑는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 중 하나였다.

흔들리고, 불확실하고, 하지만 뭔가를 해야만 했던 존재.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괜찮은 곳일까?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확신은 없었다.

다만, 아까 걸었던 올림픽공원의 풍경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상하게 그게 위로가 되었다.


며칠 후, TV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면접장 바로 옆에 있던 ‘베니건스’ 앞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해 수십 미터의 줄이 늘어서 있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그 줄의 끝에서 인터뷰를 하던 한 청년이 말했다.


> “하루 종일 기다렸어요. 뭐라도 해야 하잖아요.”




그 장면을 보고서야 마음이 정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낯선 도시에서 무언가를 시작해 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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