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5
33살.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남자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스카우트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기죽을 대기업을 떠나 벤처 기업의 기술이사로.
그와 내가 마주 앉은 날, 회사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미팅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와 처음 나눈 악수는 짧았지만 차가웠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미세한 서늘함에서 나는 느꼈다.
‘이 사람,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구나.’
표정은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감정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도 아직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 하나. 그는 미국 출장을 앞두고 자신과 손발을 맞출 사람을 직접 점찍어 두고 떠났는데, 그 사이 사장과 부사장이 그를 제쳐두고 나를 밀어 넣은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를 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고 들어온 셈이었고, 그 그림자의 주인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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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팀은 쟁쟁한 전문가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 혼자, 단 한 번의 능력 증명도 없이 ‘입사’라는 문턱만 넘은 상태였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고, 회사는 일본의 다카오사와 고액 기술 컨설팅을 추진 중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그러나 공식적으로 첫 업무에 투입되었다.
통역자. 회의 조율자.
그리고 이틀 뒤, 다카오와의 미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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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일본어를 잘한다고 생각해 왔다. 여행지에서, 일상 회화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꿰듯 외웠으니까.
하지만 이 회의실은 전장이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어지럽게 얽힌 곳에서, 통역자는 단어 하나로도 칼날이 된다.
그리고 그 단어가 나타났다. ‘수율.’
처음 듣는 단어였다.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로도 정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순간 말을 멈췄고, 회의장이 정적에 빠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땀이 식은 등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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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중간 휴식 시간, 기술이사가 나를 불렀다.
“Mr. 문, 일본어 잘하는 거 아니었어?”
가볍지만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말의 무게가 아니었다. 말투였다. 경고였다.
다시 시작된 회의는 지옥 같았다.
단어 하나에 걸려 멈추고, 의미를 곱씹다 핵심을 놓쳤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회의는 결렬되었다.
핵심 쟁점은 바로 수율 70%.
회사 측은 “70% 이상이면 기술이전료를 지불하겠다”라고 했고,
다카오 측은 “그 수율을 보장할 수 없다”라고 맞섰다.
차가운 악수.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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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전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은 말이 없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그만두자. 너무 일찍, 너무 큰 실수였다.
그런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잘리지 않았다.
다시 사람을 뽑기엔 시간이 없었을 테고,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만큼 형편없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뻔뻔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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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려던 부품은 wire centerless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동축 가공(coaxial machining) 방식으로 기울고 있었고,
다카오와의 결별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결국 기존을 버리는 결단과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했다.
럭스텍은 그 길을 선택했고,
나는 그 혼란과 전환의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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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결렬은,
어쩌면 회사의 실패가 아닌, 방향을 바로잡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실패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짜 나의 역할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첫 미팅은 그렇게 끝났지만,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