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너머의 협상

럭스텍 이야기 8

by 문주성

신기술이 세상을 바꾸던 그 시기, 럭스텍은 과감히 동축가공 방식으로 전환했다. 모든 일이 계획표대로 진행되었다. 공장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허가는 떨어졌고, 신축 공사는 한창이었다. 각 파트의 팀장들도 정해졌고, 장차 들여올 기계들에 대해 하나둘씩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으로 가 기계와 소재를 계약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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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가공 방식은 그 무렵 막 세상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기술이었다. 관련 기계를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 당연히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깨어졌고, 시장 가격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본 적도, 팔아본 적도 없는 회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신중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의 첫 계약 대상은 ‘내경 가공기’였다. 처음 견적이 높게 나오는 건 당연했다. 살지 안 살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누가 먼저 실속 있는 가격을 내놓겠는가. 그러나 구매 의사가 분명해 보이면, 현실적인 가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위 말하는 ‘네고’—그 업계의 미덕처럼 여겨지는 마무리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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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술이사와 나는 며칠 밤을 새우며 정당한 가격을 분석하고, 협상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반복했다. 계약 당일, 우리는 왜 이 가격이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담당자는 조용히 듣기만 하더니, 갑자기 회의를 중단하고 상무와 협의에 들어갔다. 한참 뒤 돌아온 그는, 담담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O.K.”


우리는 기뻤다. 우리가 원하던 가격으로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그런데 돌아서며 문득 깨달았다.

너무 쉽게 승낙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제시한 가격이 그들에게는 충분히 여유 있었다는 뜻이었다.


회사엔 이렇게 보고했다.

“상대의 고집을 꺾고,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받아냈습니다.”

우리도 결국, 조직 안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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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계약부터는 달라졌다. 보다 과감하게 가격을 조정했고,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쥐려고 애썼다. 하루에도 수억, 수십억 원짜리 기계를 계약하는 일은 어느 순간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상대 영업사원들의 땀과 열정이었다. 기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온몸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들은 단순히 ‘파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직접 다루며 설명하는 ‘진짜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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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소재였다. 아직 국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야 했다. 그런데 이 소재는 단 한 회사에서만 생산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판매를 거부한다면, 공장도, 럭스텍의 전체 스케줄도 모두 멈춰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 회사를 담당하는 일본 영업사원은 내게 거의 신(神) 같은 존재였다. 그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럭스텍의 미래가 갈릴 수도 있었다.


보통 일본 사람을 부를 땐 ‘○○상’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를 은근히 **‘사마’**라고 불렀다. 경의였을까, 위협이었을까. 이름이야 뭐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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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이다마 공장을 방문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생각보다 젊었고, 회의 내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동석한 공장장—소재 생산을 담당한 상무와 그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내가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 젊은 사원은 조용히 슬리퍼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순간 헛웃음이 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협상의 파트너가 아니구나.


나는 곧장 공장장에게 직접 핫라인을 요청했고, 허락을 받았다. 이후 모든 업무는 그를 배제한 채 공장장과 직접 진행했다. 젊은 사원에게서 배울 건 없었지만, 공장장에게는 기술적으로 얻을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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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한 달 만에 우리가 원했던 모든 기계와 소재의 계약을 끝냈다.


누군가는 숫자를 남기고,

누군가는 사람을 남긴다.


그리고 나에겐, 그 한 달이

숫자이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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