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땀, 사람의 손

럭스텍 이야기 9

by 문주성

공장이 거의 완공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온도 변화에도 민감한 세라믹 소재를 다루는 만큼, 이물질을 철저히 차단하는 시스템을 갖춘 첨단 공장이었다. 내부 공정은 꼼꼼하게 설계되었고, 이제 남은 건 일본에서 구입한 고가의 기계들을 검수하고 국내로 들여오는 일이었다.


이 검수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일본 기술자들이 기계를 시연하고, 한국 기술자들에게 직접 사용법을 전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보통은 일주일, 길게는 2주까지 이어졌다. 나는 기술자들 사이에서 하루 종일 통역을 맡아야 했고, 때로는 내가 먼저 사용법을 익힌 뒤 한국 동료들에게 다시 풀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도 했다.


기술이란 참 묘하다. 말로는 설명이 되는데, 실제 구현은 각 기술자의 손끝에 달려 있다. 설명을 똑같이 들었어도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기술자의 숙련도, 감각, 감정까지도 그 결과물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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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외곽, 기술이 숨 쉬는 곳


이번 출장은 무려 두 달에 걸쳐 진행되었다. 내경가공기에서부터 마지막 곡률가공기(PC가공기)까지 연인원 50명이 넘는 인원이 움직였다. 기계를 하나 검수하고 나면, 그 소재를 한국으로 들여와 후공정을 진행하고, 다시 일본으로 보내 동축가공을 마친 뒤 다시 들여오는 지난한 과정이 반복되었다.

누구 하나라도 오차가 생기면 전체 일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날은 내경가공기를 검수하러 동경 외곽의 한 공장을 찾았을 때였다. 내심 기대가 컸다. 그렇게 정밀한 기계를 만든다는 곳이라면, 분명 외관도 멋지고 세련됐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전혀 달랐다.


사철(사기업이 운영하는 일본철도) 열차가 겨우 들어가는 외딴 시골, 녹슨 간판과 부식된 외벽. 주소를 다시 확인해 봐도 그곳이 맞았다. 반신반의하며 문을 두드리자, 머리가 희끗한 70대 노인이 나타났다. “수고했소.” 짧은 인사와 함께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계약했던 회사는 설계, 영업 담당이었고, 실제 제작은 이 하청업체에서 이루어졌다. 직원 수는 열 명 남짓. 가장 젊어 보이는 이도 예순은 넘어 보였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속은 건 아닐까 싶었다. 검수단의 분위기도 잔뜩 굳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우려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정밀기계 분야에서 수십 년을 보낸 장인들이었다. 설명은 분명했고, 잠재적인 문제까지 정확히 짚어주었으며, 젊은 기술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처음에는 불신의 눈빛이었던 검수단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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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손끝에서 전해진다


나는 통역자로서 그들 사이를 오가며, 가능한 한 기술자들이 가진 노하우를 많이 들으려 노력했다. 광통신 업계의 트렌드나 정보도 얻고 싶었지만, 그들은 묵묵히 기계만을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기술은 ‘정보’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동축가공기의 검수 날은 출장의 하이라이트였다. 로봇팔이 정밀하게 움직이며 소재 하나하나를 다듬는 그 장면은 말 그대로 ‘퍼포먼스’였다. 정밀함의 극치, 자동화와 손작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움직임. 기술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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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출장 속, 작지만 큰 웃음


긴 출장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있었다. 바로 호텔 근처의 ‘카레 식당’.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는 집이었는데, 새로 일본에 온 동료가 있으면 무조건 그 집으로 데려갔다.


매운맛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아무리 매운맛에 강한 한국인이라도 3단계를 넘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늘 1이나 2단계를 시키면서, 처음 온 사람에게는 “순한 맛이야” 하며 5단계를 권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땀을 줄줄 흘리며 카레를 먹는 그들의 얼굴은, 지친 출장 속 가장 큰 웃음이었다.


나는 그 웃음 뒤편에서 늘 바빴다. 다음 날의 일정을 정리하고, 공장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요 기술 포인트를 동료에게 전달하느라 밤늦게야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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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기계, 사람의 손


기계를 배우러 간 출장 같지만, 결국 나는 사람을 배워 왔다. 낡고 녹슨 공장 아래서, 묵묵히 자신의 기술을 이어가는 장인의 손끝에서 나는 진짜 기술을 보았다. 그것은 설명도 통역도 넘어서 있는, 사람의 내공이었다.


정밀한 철로 만들어진 기계. 그러나 그것을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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