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누구의 딸이어야 했을까

의순공주와 환향녀, 그리고 우리가 잊은 얼굴들

by 문주성

“공주”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 속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혹은 디즈니 속에서 노래하던 사랑스러운 여주인공들.

또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우아한 스타, 다이애나와 케이트 미들턴.


‘공주’라는 단어는 주인공, 아름다움, 자유, 사랑…

마치 선택받은 사람의 상징처럼 쓰인다.


그러나 그 단어는 엄연히 우리말이다.

우리 역사에도 수많은 공주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 그렇게 아름답고 자유로운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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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공주, 의순


1650년, 병자호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조선.


왕은 청나라로 한 소녀를 보낸다.

그녀는 왕의 친딸이 아닌, 왕실에 입적된 양녀였다.

이름은 이애숙. 책봉된 이름은 의순공주.


나라의 체면을 위해, 왕실의 명예를 위해.

그저 하나의 이유로, 그녀는 청의 섭정왕 도르곤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결혼 7개월 만에, 도르곤은 낙마 사고로 죽는다.

의순공주의 뜻은 묻지 않은 채, 그녀는 청의 장수 보로와 다시 재혼당한다.

그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병으로 죽었다.


그녀는 조선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고향은 그녀를 품지 않았다.


“오랑캐의 부인.”

“더럽혀진 여자.”


그녀는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친아버지조차 “공주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파직당했다.


그녀는 조선의 딸도, 청의 아내도 아니었다.

그저 두 제국 사이에서 찢기고 접힌, 한 장의 종이였다.


28세. 그녀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기록 하나 없이.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거대한 시대를 건너간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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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여자들, 환향녀


공주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병자호란 때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수많은 여성들.

그들은 **환향녀(還鄕女)**라 불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이란 뜻이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고향이 아니라 멸시였다.


강제적인 결혼, 폭력, 끌려간 삶.

그러나 조선은 그들에게 말했다.


“너는 더럽혀졌다.”

“네 몸은 더 이상 조선의 것이 아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청천강에서 목욕을 시켜야 한다며,

그들을 물속에 밀어 넣었다.

씻기지 않으면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미신이었다.


그 의식은 ‘정결례’가 아니라 사회적 속죄의 강요였다.

잘못은 가해자가 했지만, 벌은 여자에게 내려졌다.


그리고 ‘환향녀’라는 말은 어느 순간

**‘화냥년’**이라는 멸칭으로 바뀌었다.


피해는 곧 여자의 탓이 되었고,

전쟁의 흔적은 여자의 몸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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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만든 ‘공주’의 차이


서양 동화 속 공주는 고난을 딛고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다.

한 사람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며, 결국 사랑받고 기억된다.


그러나 조선의 공주는 국가의 도구였다.

그녀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공주’라는 말을 들을 때 왜

우리의 공주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왜 ‘예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이미지만 남고

그 이름 아래 묻힌 115명의 조선의 공주는 잊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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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이애숙


의순공주의 삶을 기억한다는 건,

단지 하나의 비극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 앞에

순종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얼굴들을 떠올리는 일이다.


그녀는 공주였다.

하지만 누구의 딸도 아니었다.

그저 시대에 소모된, 한 사람.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공주란, 누구의 딸이어야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누구의 기억 속에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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