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7
럭스텍에서 내가 만난, 전혀 다른 세계의 두 사람
나는 두 명의 상사를 동시에 섬겼다.
한 사람은 권력의 중심에서 자란 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재벌의 심장에서 태어난 이였다.
그리고 나는, 전깃불도 없던 시골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같은 회사를 다녔지만, 우리는 정말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회사의 이름은 럭스텍.
기술로 미래를 바꾸겠다는 꿈을 가진 벤처기업이었다.
그리고 그 꿈의 출발점엔, 이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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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동창, 그리고 미국 10년의 세월
사장과 부사장은 국민학교 친구였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10년 넘게 삶을 쌓았다.
그러다 귀국했고, 서로의 이상이 맞닿은 지점에서
럭스텍이라는 벤처기업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럭스텍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익힌 세계의 흐름, 기술의 미래,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무언가 새롭고, 당당한 걸 만들어 보고 싶었던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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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 권력의 곁에 있던 사람
처음 그를 만난 건 회사 화장실이었다.
늙은 신사 한 분이 조용히 손을 씻고 계셨다.
“할아버님, 혹시 이 건물에서 일하세요?”
나는 정중히 인사드렸지만, 그는 조용히 미소만 짓고 나가셨다.
몇 번 더 마주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는 바로 사장의 아버지, 윤필용 장군.
박정희 정권 시절 2인자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정권에서 밀려난 뒤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직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됐다.
사장의 어머니는 추어탕을 기가 막히게 끓이셨다고 한다.
밤중에 깨어보면 안방에서 식사 중이던 남자,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근혜 누나, 근혜 누나!”
사장은 그렇게 불렀고, 어린 시절엔 박지만과 함께 놀았다고 했다.
두 가족의 인연은 지금 생각해도 깊고도 각별했던 것 같다.
비록 권력의 비정함으로 한쪽은 내쳐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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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에서의 시작과 자존심
사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대우에 입사했다.
입사 첫날, 식판을 들고 서 있는데
멀리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돌아보니, 김우중 회장이었다.
그 시절엔 정치와 기업, 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카르텔의 시대였다.
사장의 친구 중엔 코오롱 그룹의 회장도 있었다.
“아버지가 좀 큰 사업을 한다고만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대기업 회장이더라.”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내심 그런 친구를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그 친구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
그는 이미 중견그룹의 사장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럭스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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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 – 재벌가의 빛과 그늘
부사장의 집안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버지는 6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한때는 대통령 후보였고,
작은아버지는 한화 창업주 김종희 회장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은 서울 홍제동, 대지 3만 평.
개울이 흐르고, 정원은 공원 같았으며,
집사는 다섯 명이나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매달 은행원 한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용돈을 받았다.
어느 해 큰 수해가 나 성금을 모을 때,
그는 자신의 돼지저금통을 들고 MBC 방송국을 찾아갔다.
생방송 중 아나운서가 저금통을 열었다가 놀랐다.
그 안엔 지금 돈으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누구의 아들’, ‘어느 재벌의 조카’라는 말속에
그 자신은 늘 덧붙여진 존재였다.
무엇을 해도 “집안이 좋으니 당연하지”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보다 더 잘해야
당연한 사람으로 보였어.”
그는 가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엔, 존재 자체를 증명하려는 묵직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는 늘 품위 있었지만,
그 품위는 화려한 배경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격이었다.
그가 회사 식당 아주머니께 늘 존댓말을 하던 이유도,
직원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던 이유도,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독한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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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 – 전깃불도 없던 마을에서
나는 그들과 달랐다.
전깃불도 없던 충남의 시골 마을.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달빛이 유일한 가로등이던 그곳에서 자랐다.
그들은 나보다 십수 년 먼저 태어났지만,
마치 다른 행성에서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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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차 뒷자리에서
매주 월요일 아침, 아산 공장에서 회의가 열렸다.
서울 사무실 소속이던 나는 전날 밤부터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장이 직접, 내 집 앞으로 차를 몰고 와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운전기사가 따로 있었지만,
그는 운전이 취미였고,
나는 조용히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그의 차 뒷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아산까지 내려가는 것,
우리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선 말이 돌았다.
“사장 차 뒷자리에 타는 놈이라니…”
그 일로 한동안 **‘썩을 놈’**이라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조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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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르쳐준 것
나는 그 두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삶의 출발선은 달랐지만,
그들은 교만하지 않았고, 유쾌했고,
무엇보다 사람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알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품격이 있었고,
그 품격은 단지 배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 앞에서 나는 자주 배웠고,
종종 감동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 사람의 가치는
어디서 왔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그 별세계 같던 두 사람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나를 뽑아주었기에
나는 삶의 소중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럭스텍에서 평생 나의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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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나에겐, 전혀 다른 별에서 온 두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내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들과 함께 했던 럭스텍의 시간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