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up 그 너머 사람을 잇다.

럭스텍 이야기 12

by 문주성

아산 공장에서의 기계 셋업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이미 일본에서의 기계 검수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퍼레이터들은 작동 방법에 익숙했고, 일본 기술자들과도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된 상태였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감 없이 협업했고, 현장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착착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는 일본 출장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운전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고, 매번 새로운 도시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었다. 익숙한 환경, 그리고 나를 도와주는 이들이 옆에 있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일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오직 나만이 일본어를 할 수 있었기에 모든 소통이 내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나 또한 일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일 뿐이었다.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낯선 상황 속에서 언제나 침착하고 원숙하게 대처하길 모두가 기대했다. 내가 당황하면 주변까지 흔들릴 수 있기에 늘 중심을 잡고 있어야 했다.


이번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셋업 중간중간 짬이 날 때면, 영어와 일본어가 섞인 기계 매뉴얼을 한글로 번역했다.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의 작은 번역 한 장 덕분에 덜 헤매고, 덜 피로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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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기계 셋업이 마무리될 즈음, 일본 기술자들은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일정을 조정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서울의 고궁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예전 통역 가이드 자격증이 이럴 때 빛을 발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경복궁 수문장과 고즈넉한 기와지붕, 단청이 살아 숨 쉬는 창덕궁의 정취에 감탄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기술과 공장만으로 기억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체험한 문화와 환대가 마음속에 남기를 바랐다.


기술자들마다 소박한 바람들을 내비쳤다.

누군가는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어 했고, 또 다른 이는 사찰의 고요함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일본식 온천과 다른 한국식 찜질방이 궁금하다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며칠이, 그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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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센터리스(연삭기) 기술자인 사또우 씨였다.


어느 날 작업이 끝난 저녁, 그는 식당 앞에서 망설이다가 나를 조심스레 불렀다.

"문상, 사실 한국에 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해도 될까요?"


그의 얼굴에는 진지한 호기심과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가 말한 ‘소원’은 바로 개고기를 먹어보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혐오식품으로 분류된 지 오래고, 한국에서도 점점 자취를 감추는 중이었다. 언론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컸다.

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어요?”


그는 웃으며 “그저 궁금해서요”라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호기심을 존중했고, 조심스럽게 그 경험을 도와주었다.


그는 내가 준비한 식사를 먹으며 연신 “와, 이런 맛이군요…” 하며 놀라워했고, 동시에 조용히 음미했다.

문화는 때론 경계가 되지만, 이렇게 진심이 담긴 경험 앞에선 다리를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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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기술자들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기술 전수는 향후 수천만 원, 어쩌면 억대에 달할 수 있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기술자이기 이전에 ‘소중한 손님’으로 대접했다. 기술은 기계에 담기지만, 그 기술을 전하는 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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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계절 하나가 지나고, 나는 아산 공장을 떠나 서울 사무실로 복귀했다.

일본 출장과 아산 공장에서의 수개월 동안, 나는 통역과 번역 업무에만 몰두했다.

문득, 내가 원래 그런 역할로 회사에 채용된 줄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영업부 직원으로 입사했다.


기술이사는 나를 계속 공장에 두고 싶어 했다.

영업부를 자신의 관리 하에 두는 것이 향후 진행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장과 부사장은 영업부는 당연히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 역시 이제는 아무도 나를 ‘통역사’로만 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동안은 팔 것이 없었기에 본업인 영업 대신 다른 일을 도왔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했다.

기계 도입은 친구 회사에서의 경험만으로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영업’은…

그건 어디서 배우고,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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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는 기술자들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던 날, 창밖으로 흘러가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계는 설명서를 보면 익힐 수 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엔 설명서가 없다."


아마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내가 진짜 ‘영업’을 시작하는 첫걸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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