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서 피는 꽃(영업)

럭스텍 이야기 13

by 문주성

“영업(営業)”의 ‘영(営)’은 일본어로 営む(いとなむ).

경영하다, 운영하다, 그리고 어떤 일에 자신을 담아 살아간다는 뜻이다.


영업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무언가를 믿게 하고, 결국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만큼 영업은 회사의 심장과도 같은 자리다.

하지만 그 중요한 자리를 신생기업 럭스텍은 또다시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신입사원에게 맡겼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내 어깨 위에 얹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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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인터넷은 아직 탐색의 도구였다.

요즘처럼 정교한 알고리즘이나 큐레이션은 없었고,

디렉터리 구조에 단순 키워드 매칭이 전부였다.


검색이라기보다는 안갯속을 더듬는 탐험에 가까웠고,

외국 기업 정보를 얻는 일은 매번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SENKO — 일본의 광통신 부품 유통 전문기업.

사내 벤처로 시작해 5년 만에 세계 6개국에 지사를 세운,

그야말로 젊은 기세의 상징 같은 회사였다.


직원들도 대부분 20대 초·중반.

노련함보다 날카로운 감각으로,

기성세대 대신 미래를 선점하려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다수 업체를 두드리기보다,

이 젊은 기업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패착 중의 패착이었지만,

그땐 그 선택이야말로 정답처럼 보였다.


그러나 샘플을 보냈음에도 답은 오지 않았다.

고요 속의 외면.

그들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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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업은 더더욱 험난했다.

“그걸 정말 국산화했단 말입니까?”

반가움과 놀라움, 그리고

“설마, 모방은 아니겠지?” 하는 차가운 의심이 엇갈렸다.


그래도 첫 거래는 성사됐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제품이 고객사에 전달되던 그 순간,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고,

감격스러움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객사는 원소재의 물성이 다르다며 장비 파손의 책임을 우리에게 묻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황했고, 막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실체가 드러났다.

그건 우리를 길들이려는, 얕은 계산이었다.


결국, 그 문제는 상대 작업자의 실수를

우리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였음이 밝혀졌다.

그날, 나는 비로소

영업이란 ‘진실의 무게’를 견디는 자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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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벽보다, 마음의 벽이 더 높았다.


우리는 샘플을 무료로 보냈지만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

“바빠서요.”

“귀찮으니 그냥 가져가세요.”

그 한마디에 모든 정성이 무너져 내렸다.


SENKO를 제외한 일본 업체들은 더 냉정했다.

자신들만 만들 수 있다고 믿던 제품이

듣도 보도 못한 한국 업체에서 도착했을 때―

그들은 샘플을 뜯어보지도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구매자의 위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팔아야 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운 눈빛과 무관심한 응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세상은 냉정했고, 인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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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영업사원이란,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순간이 반복되어도,

다시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미는 사람.


그 자리에 서서 나는 묻게 되었다.

럭스텍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준 적은 없었는지,

영업이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무심히 외면하진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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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개척의 길은, 결국 사람을 배우는 여정이었다.

제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신뢰를 파종(播種)하고, 인내로 거두는 일이 영업이었다.


그리고 나는, 낮은 곳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이 되기로 했다.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속에,

작지만 향기 깊은 기억으로 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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