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15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컨퍼런스를 다녀온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내 창고에 쌓여가는 재고가 나를 짓눌렀다.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회의 때마다 모두가 나의 얼굴울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장이 풀가동으로 돌아가도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샘플 테스트 후 적용을 검토하겠다던 고객사들은 하나둘 방향을 바꿨다.
“소량이라도 좋으니, 계속 공급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말투엔 조심스러운 간청이 묻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바람이 바뀌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판매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경을 넘고, 언어의 벽을 넘고, 시장의 문턱을 넘었다.
광통신이라는 새 시대의 빛이 비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해 추석 무렵, 처음 거래를 시작한 중국의 한 업체를 방문했다. 향후 럭스텍의 중요한 고객이 될 것 같았다.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그들은 나를 상하이의 한 호텔로 안내했다. 나는 그들이 준비한 고급 리무진을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순간 멈춰 섰다.
그곳은 당시 상하이 최고의 호텔, 스위트룸이었다.
익숙지 않은 호사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우리가 대단해졌나?"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지속적인 구매는 물론, 향후엔 해당 부품을 자사에서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문상이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들의 제안은 정중했고, 어딘가 은근했다.
그와 나는 일본 유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대화는 격의 없이 오갔다.
제시된 조건은 솔깃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라와 회사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12월 말, 대만 남부의 공업단지에 있는 회사로의 출장은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기말.
Y2K,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였다.
그날 오후, 거래처는 종무식을 겸해서 직원들과 함께 체육관에서 파티가 열렸다.
빙고 게임이 한창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다섯 번째 당첨자가 되었고, 제법 큰 선물을 받았다. 그 순간은 재미있고 따뜻했다.
하지만 진짜 놀라움은 그 이후였다.
10번째 당첨자가 발표되자, 무대 중앙의 장막이 천천히 걷혔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동차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한국의 그랜저급 차량이었다.
1등 당첨자에게 주어진, 말 그대로 ‘광통신의 황금시대’가 상징하는 선물.
나는 숨을 삼켰다.
우리도 같은 업계에 있었지만, 아직 저 무대 위엔 닿지 못하고 있었다.
럭스텍은 이제 막 시대의 파도에 올라탄 참이었다.
그 출장길, 나는 ‘이리듐’이라는 위성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모토로라가 만든, 전 세계 어디에서든 통화가 가능한 혁신적 기술.
77개의 위성으로 지구를 감쌀 계획이었기에 ‘이리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실제 사용된 위성은 66기.
서비스는 1998년에 시작됐고, 나는 그걸 들고 다녔다.
어쩌면 나는, 이리듐의 마지막 고객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기술은 완벽했다.
그러나 시장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단말기는 무겁고, 가격은 수천 달러, 분당 통화료는 몇 달러에 달했다.
도심에서는 신호가 잡히지 않았고, 실내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1999년 말, 이리듐은 파산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장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시의 이리듐은, 시대보다 앞서 있었던 기술이었다.
그러나 너무 앞서 있었기에, 결국 혼자 사라져야 했다.
럭스텍은, 그보다 한 박자 늦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탔다.
그리고 운 좋게, 그 파도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소위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였다.
빛의 속도로 달리던 그 시절이, 언젠가 우리를 시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