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16
"경기는 과열되고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품질 문제가 싹트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컨퍼런스를 다녀온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난 주문량.
공장은 연일 풀케파로 돌아갔고, 제품은 쉴 새 없이 포장되어 나갔다.
겉으로 보기엔 럭스텍이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고요한 물속에서부터 먼저 흔들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닥이었다.
초기에는 오히려 판매가 저조할 때가 더 안정적이었다.
생산량이 적어 관리가 쉬웠고, 클레임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품질 문제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눈을 피하던 균열이 점차 표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SENKO의 주문이 거세지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막강한 영업망을 믿고
럭스텍을 마치 한국 내 하청 공장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양의 제품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나는 기술팀을 믿었다.
그들은 회의 자리에서 늘 개선책을 제시했고,
우리는 개선된 제품으로 고객을 응대했다.
그러나 때때로, 부인할 수 없는 클레임이 들어오면
그들도 당황했다.
정당한 지적 앞에서, 기술도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뼈아팠던 사건은
Optical Attenuator를 OEM 방식으로 납품했을 때였다.
전량 반품.
그 규모는 작지 않았고,
만족스러운 결과만 나왔다면
럭스텍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오더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 사건 이후, SENKO는 아예 기술자 일부를
우리 아산 공장에 상주시켰다.
그들은 '기술 전수'라는 명분으로
우리 기술자들 옆에서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처음엔 협업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감시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과 한국의 기술력은
외형상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실제 내공에서는 분명한 격차가 있었다.
그 차이를 문서로, 말로 부정해도
제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기계 검수가 아님에도 공장에 방문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과 가까워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느 날,
그들은 한국 기술진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털어놨다.
놀라울 만큼 냉정한 평가였다.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듯했다.
‘우리는 아직 멀었구나.’
자존심이 상했고, 동시에 수긍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흔들렸다.
영업과 생산은 수레의 양 바퀴다.
한쪽이라도 삐끗하면, 그 수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생산 쪽에서
신호음이 켜지고 있었다.
다만, 모두가 성장의 환상 속에 있었기에
그 미세한 진동을 애써 외면했을 뿐이다.
당시 회사는 100명이 넘는 조직으로 커져 있었다.
아산 공장에 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가득했고,
이제는 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렇게 무턱대고 뽑아도 괜찮은 걸까…’
불안이 스쳤지만,
인사나 생산라인 인력은 내 영역 밖의 일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안의 모든 이들이
마치 지금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으로 온전히 이뤄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은 자부심이었지만,
어쩌면 집단적 착각이기도 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내게 책임감을 안겨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우쭐함으로 바뀌어 있음을 느꼈다.
나는 영업부 팀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 직급은 고작 ‘대리’였다.
그럼에도 회의 시간에는
기술이사와 비슷한 무게로 발언을 이어갔다.
내가 시장의 흐름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작업자가 충원되었고,
라인이 증설되었다.
그 무게감은 때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사람을 조금씩 무르게 하기도 한다.
당시 부사장은 나를 ‘기꼬만’이라 불렀다.
“문 팀장이 요즘 기고만장하지?”
반은 농담, 반은 경고처럼 들렸다.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 어딘가엔 그 말이 단단히 박혔다.
나는 절정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금이 가고 있었다.
성장은 바깥에서 드러나는 것이지만,
균열은 언제나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실금들이 스며들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감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다.
성장의 속도에 취해 있을 때,
그림자는 내 바로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