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17
어느 날 아침, 히로세코리아라는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구매과장이었다. 예전에 몇 차례 통화한 적 있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당시는 일본에서 자재를 전량 공급받고 있던 터라, “지금은 구매 의사가 없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오늘은 다짜고짜 말했다.
> “텐트를 치려고 아산 공장으로 내려갑니다.”
말뜻을 이해할 새도 없이 이어진 그의 설명은 충격이었다.
럭스텍이 생산하는 핵심 부품이 끊겨 공장이 멈췄고, 일본 본사에서도 “각자도생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과장님이 내려가셔도… 드릴 수 있는 자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내려갔다.
그리고 공장 한쪽 구석에 조용히 텐트를 쳤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일은 럭스텍이 생산하는 자재를 구하는 일입니다.
공급해 주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서는 전율이 흘렀다.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사이렌이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단지 거래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존이, 한 회사의 운명이,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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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무실에는 거래처 사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다. 구매 담당자로는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어떤 이는 협박을,
어떤 이는 간청을,
어떤 이는 눈물을 보였다.
외국의, 이름도 생소한 회사들까지 메일을 보내왔다.
서울 호텔에 머물고 있으니 단 한 번만 만나달라고.
미국을 중심으로 IT 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
그 기초가 되는 소자가, 바로 럭스텍이 만드는 제품이었다.
전 세계가 정지된 듯했다.
병목 현상이 아니라, 마비에 가까웠다.
> “조금이라도 줄 수 없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정말 간절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그중 한 회사의 창업주는 워커힐 호텔로 날 불렀다.
직접 리무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매출 2조가 넘는 기업의 회장이었다.
세계적인 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이었다.
가격은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을이 갑을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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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어느 밤 사장이 날 청담동의 고급 술집으로 불렀다.
낮에 만난 미국 업체 담당자가
“이런 인재는 처음 봤다”며 극찬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니고 우리 팀의 직원이었음에도
사장은 들떠 있었고,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밴드가 연주를 하고,
TV에서 보던 여배우가 사장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는 나에게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날 ‘나는 문제없어’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노래는
내 안의 불안을 억누르려는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없다’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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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는 ‘영업’이라는 이름으로
단 한 번도 구매처와 술자리를 함께한 적이 없다.
거래처와의 신뢰는 제품과 정직한 대응으로만 쌓아왔다.
그럼에도, 그 시절은 영업사원으로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찬란한 절정이었다.
나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실력보다는 시대의 흐름이 나를 들어 올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정의 끝자락에서,
기술이사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장과 부사장에게
“이제는 물러나십시오. 앞으로는 제가 럭스텍을 이끌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심지어 영업부를 아산 공장에 배속시키자는 안까지 내놓았다.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이던 시절.
그의 야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 역시 문득 생각했다.
> ‘이제 나도 독립해도 되겠는걸.
광통신 부품 유통 정도는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사장과 기술이사는 시간을 두고 다시 논의하자며 일단락 지었지만,
그 순간 이미 모두의 마음속에는
욕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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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풍경은 마치 연극 같았다.
누구나 높이 떠 있었고,
누구나 자신이 중심이라고 믿었고,
모두가 그 광기가 영원하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