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18
그때까지 나는
주말과 주일의 구분 없이,
거의 회사를 집처럼 살아갔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였지만,
나는 그 일들을 오히려 즐겼다.
회사라는 공간은 내게 놀이터였고,
나는 그 안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함을 열었다.
관리부서에서 도착한 낯선 제목의 메일 하나.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나는 조금 더 오래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메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전 직원의 급여 명세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사장은 물론, 기술이사, 팀장과 주임, 심지어 인턴까지—
모두의 월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건 명백히
잘못 전달된 메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코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아버렸다.
나는 그동안
내가 회사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내 말 한마디는
프로젝트의 향방을 바꾸었고,
공장의 인원을 늘리자거나
설비를 증설하자고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영업부를 이끄는 리더였고,
회사라는 수레바퀴의 한 축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세서 속 내 이름 옆에는
‘초급 대리’라는 직급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일주일 전 서울 본사에서 입사한 관리부 대리는
나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는 나를 ‘팀장님’이라 불렀고,
나는 그를 ‘이대리’라 불렀다.
누가 봐도 내가 상사였지만,
숫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회사가 상장될 경우
나는 세 번째로 많은 스톡옵션을 약속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어떤 숫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었다.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해 전,
면접을 보러 오던 날 걸었던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입사 초기, 마음이 복잡할 때면 자주 찾던 곳이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점점 잊고 살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날, 공원은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맞아주었다.
초록 잎은 바람에 흔들리며 속삭였고,
벤치들은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억울했고, 분했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 대우받으며 살아왔구나—
그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담배라도 피울 줄 알았더라면,
하얀 연기라도 뿜어내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회사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받는 처우는
나를 향한 불신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왔기에,
앞으로는 받은 만큼만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많이도 미숙하고 어린 사람이었다.
럭스텍과 나는 한 몸이라고 믿었는데,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회사를 ‘외부’에서 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내가 회사를 차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늘 조심스러워야 했던 사내 정치에서 벗어나,
정직한 품질로 승부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회사는 상장을 앞두고 있었고,
럭스텍의 제품은 이미 품귀 현상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과 기술이사 간의
오랜 긴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영업부는 사무실만 서울에 존속하되 공장으로 배속되고,
사장과 부사장은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결정됐다.
분당으로의 사무실 이전도 확정되었고,
공개된 사진 속 건물은
회사가 큰돈을 벌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번듯했다.
그리고 나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분당으로 간다면, 이사도 가야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퇴사였다.
모두가 놀랐다.
개별 면담이 이루어졌고,
월급 때문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솔직히 말했다면
해결책이 제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지질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럭스텍의 상장에 대한 내 마음은
이미 부정적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기술이사와의 오사카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
한 통의 잘못 전달된 메일.
그것은 단지 하나의 실수가 아니었다.
그 메일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균열을 드러냈고,
나는 처음으로 ‘나의 자리’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메일은
잘못 온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멈추지 못하던 내게 도착한
작은 신호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