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텍 이야기 19
기술이사와의 일본 출장을 끝으로,
나는 럭스텍을 떠났다.
사직서를 제출한 날,
내가 그렇게까지 차가운 사람인 줄 나도 몰랐다.
말없이 노트북을 닫고,
정리된 책상 위에 봉투 하나를 올려두었다.
퇴사 직전, 후임자를 뽑을 때
나는 A3 용지 한 장을 건넸다.
그 위에 일본어로 다음과 같이 쓰라고 요청했다.
> “IT 업계의 미래를 설계하라.”
3년 전, 내가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받은 황당함에 대한 깨알복수였다.
그해에도 IMF의 여파는 이어졌고,
지원자들 중엔 4개 국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언어를 단단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일본어 외에 영어도 유창했다.
럭스텍은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곧 새 영업팀장을 뽑았다.
우리는 숲을 걷고 있었다.
동서남북도 분간하기 어려운 숲.
때로는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길을 잘못 들어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숲의 이름은 ‘IT’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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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럭스텍을 떠난 그로부터
불과 2~3개월 후,
광통신 업계는 괴멸적 붕괴를 맞았다.
주문은 멈추었고 그동안 받았던 주문도 거의 철회되었다. 거품이 굉음을 내며 폭발한 것이었다.
1998년 가을, 내가 입사한 이래
2001년까지는 ‘거품의 시대’였다.
바로 IT 버블, 닷컴 버블이라고 불리는 시기였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열광적인 기대 속에서
실체 없는 회사들이 상장을 하고,
수익은커녕 매출도 없던 기업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세상은 들떠 있었다.
광통신망, 해저케이블, 스위칭 장비—
인프라 투자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광풍의 끝자락에
럭스텍이 서 있었다.
Lucent, Nortel, Cisco, Ciena...
수십 배 성장한 통신장비 업체들의 주가는
그 어떤 종교보다 더 뜨겁게 숭배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깔아놓은 망을 쓸 트래픽은 없었다.
케이블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장비는 공장에서 썩어갔다.
낙관적인 수요 예측은
부풀려진 꿈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버블은 터졌고
벤처캐피털은 빠져나갔으며
IT와 광통신은 함께 무너졌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배가 빙산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내부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
마치 타이타닉호처럼.
그리고 럭스텍은
그 바다 위에 조용히 침몰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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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신히 구명보트를 타고 빠져나온 사람처럼,
그 침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쑤시듯 아팠다.
럭스텍은 내게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첫 회사이자
마지막 회사였고,
한때는
내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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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를 키운 것도,
나를 떠나보낸 것도
모두 그 시대, 그 회사였다.
퇴사는 끝이 아니었다.
빛이 꺼진 자리에 서서,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