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간 아이

by 문주성

2025년 6월 14일.

서진이의 천국 환송예배가 열린 그날, 하늘은 하루 종일 조용히 비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땅의 눈물과 하늘의 눈물이 함께 섞여, 작은 아이를 배웅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서진이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교회 어느 날, 까까머리를 하고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던 아이. 그 천진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그 서진이가, 장례식장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주보를 통해 알게 된 사실 하나하나가 가슴을 쳤다.

서진이는 생후 10개월부터 암을 앓았고, 그 앙증맞던 까까머리는 항암 치료의 흔적이었다.

자그마한 몸으로 수차례 수술과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뎌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엄마를 먼저 위로하던 아이였다고 한다.

총명하고 말을 잘하던 아이.

그러나 이제는 말 대신 사진 속 웃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날 장례식장에 가는 발걸음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서진이 어머니가 BC주에서 치료를 위해 홀로 이주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누군가는 함께 울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엔, 같은 교회였으면서 한 번의 병문안도 가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뿌리처럼 자리를 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이런 어린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님이 뜻이 있으시다”라고 말하지만, 그 뜻이 너무 멀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서진이는 아직 말을 더 배우고, 세상을 더 알아갈 시간이 남아 있었던 아이 아닌가.

그 해맑은 웃음 하나로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던 아이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했을까.

왜 주님은 이토록 순한 영혼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셨을까.

그날 나는 하늘을 향해 원망 섞인 마음을 품고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하나님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셨다지.

그분도, 사람의 죽음 앞에선 눈물을 흘리셨다지…’


그 생각을 떠올리자, 마음 한편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래, 아파하는 것도 죄가 아니구나.

눈물은 믿음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안에서 흘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고백이구나.


믿음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왜?’를 묻기보다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서진이는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남긴 아이였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살아간 아이.

짧은 생이었지만, 그 미소 하나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켰던 아이.


그날 장례식에서 불린 찬양의 가사가 다시 떠오른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래, 서진아.

넌 정말 그렇게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간, 사랑 그 자체였구나.


이제는 아프지 않은 하늘나라에서

네 해맑은 웃음으로 마음껏 뛰놀기를,

그곳에서는 더 이상 주사도, 병원도, 수술도 없는 평안 속에서

주님의 품에서 안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오늘부터라도

내가 외면하고 지나친 아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서진이 너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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