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신뢰라는 것은 쌓아가기도 어렵고, 유지하기는 더 힘들며, 무너지는 것은 더없이 쉽다는 것을.
저는 지금 캐나다 에드먼턴의 Weldco라는 회사에서 아홉 해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민 생활 12년 가운데 9년을 이곳에서 보냈으니, 제 이민의 대부분은 Weldco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015년, 갑작스러운 오일 경기 침체로 해고를 당했습니다. 보일러메이커 멤버가 되기 위해 집에서 500킬로 떨어진 곳으로 갔지만, 두 차례의 Fort McMurray 대형 산불로 직장을 잃고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뒤로 보험업체의 긴급 청소 일을 전전하며 시급 20불을 받는 현실에도 감사해야 했습니다. 북쪽 끝 옐로나이프까지 14시간을 달려가 석 달을 버틴 적도 있었고, 에드먼턴에서 7시간 떨어진 인디언 밴드의 주유소 겸 편의점에서 홀로 근무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집사님의 권유로 밴쿠버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Weldco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낸 회사였기에, 그 이름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렇게 1년 반 만에 진짜 직장을 얻었습니다.
처음 마주한 400톤 트럭과 100톤 삽(shovel)의 위용은 저를 압도했고, “과연 여기서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방황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기에 probation 기간만큼은 무조건 버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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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트랜스퍼
3개월쯤 지나 안도의 숨을 내쉴 무렵, 가족과 한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지 이틀 만에 General Manager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문, 너를 에드먼턴 본사로 트랜스퍼시키려고 한다. 의견은 어떤가?”
겉으로는 의견을 묻는 말이었지만 사실상 통보였습니다. 이미 lay off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와 또 한 명이 본사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급여도, 환경도 포트 맥케이보다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3개월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날, 다시 포트 맥케이로 복귀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다짐했습니다.
“다음 lay off 명단에는 절대로 내 이름이 올라서는 안 된다. 나는 가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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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실함, 커다란 울림
용접 실력도, 피팅 능력도 평범했던 저는 오직 성실함으로 승부 보기로 했습니다. 자비로 First Aid 자격을 취득했고, 매일 아침 신선한 커피를 내려 동료들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문이 또 커피를 준비했네” 하던 동료들이 나중에는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작은 일이었지만, 그 속에서 저는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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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Grinder 에피소드
General Foreman은 지급품 부족을 이유로 die grinder를 매일 툴 클립에 반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번째 텀의 끝 무렵, 꾸준히 반납하는 사람은 저와 룸메이트뿐이었습니다.
룸메이트가 말했습니다.
“형님, 아무도 안 지키는데 우리만 굳이 할 필요 있나요?”
저는 끝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툴 클립 담당자에게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General Foreman이 누가 지키는지 다 보고 있어. 계속하는 게 좋아.”
그리고 다음 텀, shovel repair 작업 중 General Foreman이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용접 부위를 가리키며
“네가 했어?”
순간 긴장했지만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크게 칭찬했고, 다음 날 아침 회의에서 제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작은 성실함이 결국 신뢰로 이어진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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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무게
얼마 지나지 않아 General Manager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Mr. Moon, 고마워요. 매일 내려주는 커피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와의 첫 대화였습니다. 똑같은 원두, 똑같은 양이었지만, 진심 어린 마음은 맛까지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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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으로 완성되는 신뢰
에드먼턴에서의 3개월은 **‘버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die grinder 에피소드는 **‘작은 성실함이 큰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입사한 지 1년 반이 지났을 때, 여전히 많은 동료들이 실직 상태였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General Foreman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보다 용접도 잘하고, 영어도 유창하며, 저와 똑같이 성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습니다.
“명단을 써오세요.”
저는 열 명이 넘는 이름을 적어 제출했습니다. 놀랍게도, General Foreman은 제가 적은 모든 사람을 회사로 불러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이 회사에 입사한 75명의 한국사람 중에 60여 명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하며 입사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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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초년생들에게
신뢰는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행동이 쌓이고, 그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으면, 신뢰는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됩니다.
이민의 길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험난합니다. 처음엔 보여줄 기술도, 언어도, 인맥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당신이 가진 성실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사실은 모두 지켜보고 있습니다. 묵묵히, 꾸준히, 작은 일을 성심껏 해내는 모습은 언젠가 반드시 길이 되고, 신뢰가 되고, 기회가 됩니다.
저 역시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확신합니다.
성실함은 결국 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