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자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한 줄 한 줄이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것.
내려놓고 싶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것.
그래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
문장을 읽으며 잠시 멈췄다.
이 말은 투정도, 푸념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나보다 연배가 있다.
자녀도 이미 다 커서, 이제는 조금은 자유로워질 나이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자라면 짐이 줄어들 거라고,
아버지도 비로소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의 말은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착각인지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씩 무게를 가볍게 하고 싶은데…
더 무겁게 짊어져야만 하니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네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의 통증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아픔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아버지는 내려놓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니, 어쩌면 배웠지만 끝내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식이 자라도,
가정이 안정되어도,
삶은 여전히 “내가 버텨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점점 약해진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 말하며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몸을 옮긴다.
그 문자를 받고 마음이 아팠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안에 내 미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우리는 늘 누군가의 버팀목이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로
조금씩 자신을 뒤로 미뤄 둔다.
어쩌면 인생이란
무게를 내려놓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무게를 안고도 걸어가는 법을 익히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아픈 다리로 한 걸음을 내딛는
그의 문자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답장을 쓰지 못했다.
공감한다는 말이
너무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