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잔혹한 진화의 기록
1. 설명할 수 없는 분노, 상상할 수 없는 광경
911 테러로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지던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비행기가 건물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인간의 상상력 밖의 일이었고, 경악을 넘어선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삶의 터전을 쓸어버릴 때도, 국보 남대문이 불길 속에서 허물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거대한 상실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통된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1997년 여름, 일본의 작은 자취방에서 마주한 충격은 결이 조금 달랐다. 그것은 뜨거운 분노보다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서늘한 소름에 가까웠다.
2. 정적 속에 흐르던 잔인한 기록
일본 열도가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다. 경시청의 발표와 전문가들의 분석이 쏟아졌지만,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모든 예측은 빗나갔다. 화면에 뜬 숫자는 '만 14세'. 그 소년은 너무나 평범한 얼굴을 한 채, 우리 곁에 살고 있던 아이였다.
나중에 밝혀진 소년의 행적은 더욱 참혹했다. 그는 만화와 소설의 가상 세계에 침잠하며, 생명의 고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은 곤충이었다. 그다음은 새, 그리고 고양이로 이어졌다. 얼마나 상처를 주어야 최대한의 고통을 느끼는지, 어떤 순간에 생명이 끊어지는지를 관찰하며 그는 잔인하게 진화해 갔다.
결국 그 실험의 대상은 학교의 약한 급우들, 즉 사람에게로 옮겨졌다. 이유 없는 시비와 폭력은 연구의 연장선이었고, 교문 앞에 남겨진 비극은 그 비뚤어진 탐구의 종착역이었다.
3. 가장 가까운 곳의 눈먼 목격자들
이 사건에서 나를 가장 절망케 했던 지점은 따로 있었다. 범인이 잡힌 후 드러난 가족의 모습이었다.
소년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방 안에서 어떤 끔찍한 탐닉에 빠져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그들은 아들의 영혼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조차 눈먼 목격자가 되어버린 현실. 유학생이었던 나는 그 사실을 마주하며 분노했다. 한 생명이 괴물로 변해가는 동안, 이 고도화된 현대 사회와 가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질서 정연한 사회의 밑바닥에 흐르는 이 기괴한 무관심을 목격하며, 나는 그해 여름의 열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4. 무너진 경계 위에서 던지는 질문
열네 살이라는 숫자가 보호의 상징이 아니라 가해의 가면이 되었을 때, 내가 믿어온 세상의 경계는 무너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숫자 뒤에 숨은 본질을 보려 애쓴다.
지금도 촉법소년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사건들을 보며, 나는 1997년 그 여름의 텔레비전 앞으로 되돌아간다. 소년은 왜 동물의 비명에서 행복을 찾았어야 했을까. 우리는 왜, 그리고 소년의 부모는 왜 그 신호를 놓쳤던 것일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이제 날 선 비판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믿었던 질서가 어긋날 때 인간은 조용해지지만,
그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성찰이어야 한다.
관심이라는 이름의 감시가 아니라, 이해라는 이름의 시선이 필요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소외된 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균열을 먼저 살피는 것.
그것이 1997년 고베의 서늘한 여름이 유학생이었던 나를 거쳐, 오늘을 사는 나에게 남긴 마지막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