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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이 텅 빈 것 같다

우리 형님

by 바다나무

주말이라 시골 바다나무 농원에서 풀을 뽑았다. 농원은 약 800평 정도로 날망에 있는 바다나무 정원의 길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농원 역시 꽃과 나무만 심은 터라 반은 시골에 계시는 형님이 고추, 양파, 참깨 등 농사를 지으신다. 혹여 마음이 변하면 농원에 조그만 별장식 주택이라도 지을까 싶어 여지를 두고 우선은 준이 놀이터 삼아 정원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 오늘따라 형님이 농사지으시던 옆에 있는 밭이 황량하게 느껴진다.


동네는 비탈길을 내려가 벚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조금 가면 있다. 물론 그곳에 남편의 고향집이 있고 지금은 형님이 살고 계신다. 시골에 가면 틈을 내어 마실 가듯 잠깐씩 내려가서 형님얼굴을 뵙고 온다. 때로는 밭을 매고 계시는 형님과 밭둑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으며 동서들끼리 일주일간의 수다를 늘어놓기도 한다. 한 번도 농사일이라고는 안 해본 동서가 퇴직 후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풀을 뽑고 있는 게 안쓰러운지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무라신다.


농막을 짓기 전까지 30년 이상을 시골에 오면 형님 집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 어느 동서지간 보다 서로 의지하는 마음이 두텁다. 형님과 함께 장을 보러 가거나 식당을 가면 사람들은 큰 딸이냐고 묻는다. 형님은 몸도 약하신 데다 마루에서 내려오다 다리를 헛디뎌 다치셔서 허리가 많이 굽어있다. 그런 형님이기에 난 형님과 나들이를 할 때는 꼭 팔짱을 끼고 다닌다.


가끔씩 일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형님을 모시고 드라이브 삼아 맛집 탐색을 한다. 드시고 싶은 별식이 있냐고 여쭤본다. 처음에는 그냥 집에서 먹지 뭣하러 돈 쓰냐고 걱정하시다 내가 "인생 뭐 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면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우리는 짜장면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피자도 먹으러 간다. 물론 카페도 간다. 동서지간의 짧은 여행이다. 물론 처음부터 형님이 순순히 따라나섰을 리 만무하다. 철부지 동서 반복되는 인생 뭐 냐!라는 타령조 읊조제는 거부의 손길을 거두었다. 가끔 님이 노령연금으로 커피를 사시겠다고 하시는 걸 보면 동서와의 바람 쐼이 싫지는 않으신 듯했다.


언젠가 정자에서 노인분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할머니께서 자식들과 카페에서 차 마시고 피자 먹은걸 자랑삼아 말씀하셨나 보다. 형님이 나도 그 카페 동서랑 갔다 왔다고 하니 그곳에 계신 분들이 부러워하신 모양이다. 형님은 "자네 덕분에 나도 자랑 좀 했어!"라고 시며 나를 치켜워 주셨다. 이래저래 난 형님의 동서 자랑으로 마을 어르신들께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네 나들이 길에 챙김을 받고 있다. 어쩌면 00집 며느리이기에 앞서, 00 동서로 더 인정받 있는지도 모른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를 "날망집 새댁"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집에서 내려다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노인일자리창출이라는 이름으로 마을길 청소를 하고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고 계셨다. 나는 시원한 음료수와 사다 놓은 초코파이가 있기에 하나씩 가져다 드렸다. 그곳에는 형님도 계셨다. 모두들 출출하던 차에 달게 먹었다고 고마워하신다. 청소 끝나고 형님이 혼자 식사 챙겨드시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 비빔국수 해 놓을 테니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식사준비를 했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황에서 식사는 밭에 있는 푸성귀를 이용하는 방법뿐이 없에 비빔국수를 뉴로 선택 것이다. 물론 형님이 국수를 좋아하시는 것도 한몫한다. 수를 삶다 보니 양이 많졌다. 형님은 넉넉한 국수를 보시더니 정자에 계시는 동네 친구분들께 좀 가져다 드리면 안 되겠냐고 하신다. 아마 청소가 끝나고 마을 어르신들이 아까 먹은 초코파이로 점심을 해결하시려는 듯 정자에 그대로 머물러 계신다고 했다. 밥생각 없다고 하시면서.


남편보고 을로 내려가 르신들을 모두 모시고 오라고 했다. 혹여 모자랄까 봐 부리나케 국수를 더 삶았다. 언젠가 "날망집 꽃밭이 예쁘다던데..."라고 소문만 성하여 동네 어르신들이 궁금해한다는 말씀을 형님께 들은 적이 있다. 꽃밭도 보여드릴 겸 이참에 차린 건 없지만 작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우리가 주말에만 시골살이를 하기에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집에 올 기회가 없었다. 세가 많아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이 주인 없는 망집을 일부러 오리 만무하니까.


냉장고에 있던 막걸리와 음료수, 약간의 삼겹살과 부침개, 비빔국수와 수박으로 생각지도 않은 동네 어르신 점심상을 차려냈다. 부족하면 어떠랴. 나눠먹는 게 시골인심인데. 마을어르신들은 모처럼 야외에서 꽃밭을 보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고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꽃밭에 피어있는 이 꽃, 저 꽃을 보며 처음 보는 꽃이라고 신기해하신다. 당신들 어릴 때는 이런 꽃 없었다고. 이름을 묻고 예쁘다고 하시기에 원하는 꽃모종도 나누어 드렸다. 아주 엉겁결에 초라한 식사 대접을 했지만 무엇보다 형님이 좋아하 마음도 흡족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내가 지나가면 밭에 있는 고추, 호박, 감자 등 무엇인가를 챙겨 주려고 하셨다. 받기만 해서 죄송했는데 나누어 드릴 게 있다는 게 너무도 다행이 행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음식장만을 해서 초대를 할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남편 고향이라 가끔 경로당에 간식이나 명절에 약간의 성의표시는 했지만 내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 건 처음이.


이번 감기는 유독 심하고 오래갔다.리도 한 달 정도 감기를 앓으면서 시골에 가도 형님댁에는 전화만 드리고 가지 않았다. 워낙 몸이 약하신 분이라 혹여 우리 때문에 감기에 걸릴까 봐 조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면역력이 약한 형님은 감기를 비켜가지 못하고 지금은 폐렴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 병원은 아직도 코로나 검사와 노인성 질환의 전염성 여부로 면회를 차단하고 있다. 전화를 드리면 많이 괜찮아져서 곧 퇴원하실 거라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저 멀리서 꼬리 물듯 가늘게 전해져 온다. 기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야위어진 모습이 아련히 목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흩어진다.


여느 때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입원은 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 모두가 걱정하고 계셨다. 워낙 약하셔서 병마와 싸워 이겨 내실까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 수일 내 퇴원하신다고 하니 마음이 안심이다. 좀 더 자주 들여다보고 챙겨 드릴걸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원해서 돌아오시면 둘이 맛난 거 먹으러 다니고, 가까운 곳 나들이하고. 기력보충해서 온천행하고. 다시 한번 인생 뭐 있냐고 응석받이 노릇을 해야겠다. 빠른 회복으로 작은 나들이길에 탑승해 주실 날을 기다려본다. 오늘따라 형님이 안 계신 시골마을이 텅 빈 것 같다.


*날망ㅡ언덕 위, 산마루( 충청도. 전북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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