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접선이 이루어졌다. 깊은 산속 아주 은밀한 장소에서. 절대로 떠들거나 큰소리를 내면 안 되는 곳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1시간 올라가고, 준이는
위에서 1시간 내려왔다. 중간쯤이다. 어제저녁 준이와 영상통화 중 " 할마, 할빠.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보고 싶어요"라고 한다.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표시를 한다.그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우리도 준이가 보고 싶긴 매 한 가지다. 만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더라도 손자는 늘 보고 싶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대상이다. "우리 만날까? 갑자기 협상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만난곳은 진천의 넓은 정원이 있는 도서관 카페이다.
언젠가 여유 있는 날 와서 책을 읽으며 쉬어가려고 검색해 둔 카페였다. 기회를 보고 있었을 뿐이다. 준이도 우리 집에 왔다가 저희 집 가는 도중에 들러서 한참을 놀다 간 곳이라고 한다. 준이가 책을 좋아했기에가능한 것 같다. 잘됐다. 오늘 약속장소는 여기로 하자. 진천 이월서가로. 이곳은 4000여 권의 책과 100여 종이 넘는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카페이자 도서관 카페이다.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이곳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동화동과, 조용한 분위기에서 어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서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조용히 종이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커피 한잔과 함께. 동화동과 서가동사이의 넓은 잔디밭은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적합하고 주변에는 산책로가 있다. 2층 테라스에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서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하기에 충분한 장소이다. 시내에서 깊은 마을에 위치해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로 많은 책이 전시되어 있는 넓은 북까페이다.
에너지가 많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지만 책을 볼 때와 레고를 가지고 놀 때는 유독 집중력을 보이는 3세 준이. 잠깐동안이라도 멍 때리며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어 하는 30대 육아부모, 퇴직 후 나름 자기 계발로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고 있는 60대 조부모. 그들이 함께 자연을 즐기며 삼대가 세대 통합을 이루며 즐겁게 놀다 오기에는 적합한 맞춤형 카페였다. 그곳은 커피값 대신 공간이용료를 받고 있었다. 그것으로 입에 맞는 음료를 마시면 된다. 책을 보다, 잔디밭에서 뛰어놀다, 산책길을 걷다가 오로지 준이에게만 집중하여 함께 놀아주었다. 사실 집에서는 가사를 하면서 돌보는 상황이라 올인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준이도 안다. 오늘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걸.
한참을 뛰어놀다 보니 준이네 가족도 우리도 배가 고팠다. 만난다는 설렘으로 아침이 부실한 탓이다. 이곳에는 맛있는 막국수 집이 있다. 준이엄마가 시집가기 전에 서너 번 먹어보았던 식당이라 그때의 국수맛을 기억하고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린 새싹을 얹어서 먹는 담백한 막국수집. 맵지 않은 물국수와 고기만두 덕분에 준이의 식사까지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수육은 사위를 위한 서비스다. 아직은 준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장소를 이동했다. 스케쥴러인 할아버지가 다음 장소를 탐색해 두었다.
진천이라는 지역이 그리 넓지 않아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식물원카페이자 넓은 잔디밭과 건축물들이 있는 곳이며 이곳 역시 도서관이 있는 북카페이다. 딸과 사위가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고 요즘 우리도 건축이나 주택에 관심이 많기에 안성맞춤인 카페였다. 무엇보다 준이가 놀만한 공간이 될까 싶어 만나기 전에 사전답사를 하고 간 곳이었다. 이 정도의 카페면 가족 모두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이곳도 세대통합이 가능한 곳이다.오늘의 준이와의 만남에서는 정원이 있어야 하고,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어야 하고, 볼 수 있는 책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남편이나 사위가 관심 있어하는 건축디자인이 함께 있었다. 뤁스퀘어라는 카페에는.
미래농업 복합공간이라는 이름하에 사회변화, 인구변화, 문화변화에도 미래의 농업이나 농촌의 변화는 지속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공간이었다. 특히 아쿠아포닉스 스마트팜에서 성장하는 친환경채소들은 미래사회의 먹거리이자 건강을 지켜주는 새로운 농사기법들이었다.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친환경 먹거리들의 생성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자연생태계를 보전해 주는 더불어 살아가는 또 다른 환경보호이고 지구 지킴을 실천하는 모습이 선보여졌다.
정원식물이 가득한 실내카페와 북카페. 그리고 야외로 조성된 공간은 또 다른 볼거리와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예쁘고 조용한 실내의 숲정원에서 나무향기 맡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기분이었다. 실외정원에는 산책길과 무인양품과 하라켄야의 콜라보로 만든 양의 집과 몇 개의 모듈러 주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심플한 농가주택들이다. 최근 티브이의 건축가 탐구나 유튜브에서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농막이나 이동식 주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요즘 우리들의 관심사였다. 별도의 건물로 마련된 북카페도 농업과 건축, 디자인에 관련된 책들이 즐비하여 딸과 사위는 잠시 그곳에서 머물며 책을 보고 육아에서 벗어난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준이는 우리와 산책을 하며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고.
오늘도 갑자기 잡아진 일정으로 작은딸은 함께하지 못했다. "이모는 많이 바빠! 나하고도 안 놀아주고!" 어느 날 준이의 투정에 작은딸이 맘에 걸렸는지 볼일을 보고 뒤늦게 합류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모모습에 준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1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온 이모의 서프라이즈는 성공이었다. 준이가 함박웃음을 지며 좋아하는 걸 보면. 예쁜 이모 얼굴만 보아도 행복한 준이는 오늘도 이모바라기였다. 이모가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2등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함께했다. 무엇보다 준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아 행복했다.
그곳에는 돈가스와 소바를 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100시간 이상 저온숙성한 질 좋은 고기로 카츠를 만든다는 식당은 건강을 염두에 두고 음식을 만들었기에 맛이 있었다. 배도 부르고 어둠도 몰려온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준이는 준이집으로, 우리와 작은딸은 우리 집으로. 헤어짐을 직감한 준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다음에 또 만나!"의 인사말에 힘없는 손만 흔들뿐이다. 이모의 뽀뽀세례를 받고 간신히 미소를 띤 준이가 먼저 출발했다. 나와 작은딸은 같은 차를 타고, 남편은 홀로 집으로 향했다. 두대의 차가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의 순간이었지만 이런 특별한 만남도 가끔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중간에서 만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