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음이 바빴다. 여유 있게 우리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먹고 즐기는 시간이 다소 제한될 것 같다. 숙소가 변경이 되어야 함에 짐정리에 분주하기까지 하다. 오후에 준이(손자)가 온다고 한다. 오늘이 남편의 생일이라. 어찌 되었든 우리 내외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집으로 올 준이네가, 여행옴으로 해서 생일 축하장소가 제주도로 바뀌었다. 봄에는 작은딸이 잠시 다녀가더니, 이번에는 큰딸가족이 함께 하게 되어 마음 한편이 흐뭇하다. 미안한 마음도 옅어지고.
여유 있는 오전시간을 틈타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갔다. 그곳은 쭉쭉 뻗어 올라간 삼나무가 한눈에도 시원하고, 청정한 공기와 숲이 주는 느낌이 좋아 자주 갔던 곳이다. 특히 산책로가 잘되어 있어 편안하게 숲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도록 경사도 완만하여 힐링할 수 있는 숲이다. 절물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절 옆에 물이 있었다는 이름에서 유래했으나 지금은 절은 없고 약수암만 남아 있다. 약수터에서 나오는 용천수는 신경통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지며, 현재도 제주도에서 먹는 물 1호로 지정, 관리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우리는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너나들이길(3Km)을 산책하면서 이곳의 숲과 자연환경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요즘은 시간적 여유만 허락된다면 해설사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배움의 폭을 확대해 가려고 노력한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무심코 의미 없이 지나쳤을 자연이 새로운 의미들로 내 인생에 다가든다.
너나들이길의 끝에 있는 약수터에서 숲해설사의 설명을 끝으로 우리는 바로 휴양림 안에 있는 절물오름으로 등산을 했다(약 2Km). 이 오름은 큰대나오름과 족은대나오름 등 두 개의 오름을 끼고 있고, 오름 옆구리에 둥근 화구가 남아 있는 특이한 유형을 가지고 있다. 깊은 분화구에는 온갖 자연림들이 가을색으로 아름답게 단풍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절물오름은 다른 오름과는 달리 숲길을 이용하여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고,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특별한 오름이었다. 가히 세계 최고의 휴양생태 관광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치유와 힐링의 보고지이며 아름다운 숲이었다.
그곳을 나와 준이를 만나러 공항으로 갔다. 처음 타본 비행기가 신기했는지 연신 조잘대며 얼굴에 미소가 환하다. 내리자마자 할아버지, 할머니 생일축하한다고 머리에 하트를 그리고 볼에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축하사절단이 제대로 그 몫을 다하고 있다. 낯선 장소에서의 만남이 즐겁고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다소 요란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지만 준이와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내일부터의 일정은 아마 준이 위주로 진행될 것 같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준이가 좋아하는 스누피 가든으로 향했다.
스누피가든은 피너츠 친구들의 인생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실내 테마홀과 탁 트인 오름 전망대, 야외 정원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피너츠는 찰스 M슐츠가 50여 년간 매일신문에 연재하던 짧은 길이의 코믹스트립이다. 특별한 스누피와 그의 친구들인 찰리 브라운, 루시, 라이너스 등 친구들이 다양하게 만들어 가는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이 공간은 아이들에게는 친근감을 주지만 어른들에게는 잠시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꿈의 장소이기도 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과 우정,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의 일상에서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마주 할 지도 모른다.
한참을 뛰어놀고 나니 예약오류로 점심을 간단하게 먹은 터라 배고픔이 느껴졌다. 맛난 저녁으로 생일
상을 큰딸이 차려줄 모양이다. 제주도는 역시 흑돼지다. 딸은 미리 검색해 둔 맛집이라고 하는 곳을 가려고 테이블링 앱을 이용하여 예약을 했다. 10분이 지나면 예약이 취소되므로 가는 도중 수시로 대기순을 확이해야만 했다.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하긴 오늘 점심도 어제 아란치니(시칠리아 전통음식) 맛집으로 어렵게 미리 예약을 했었다. 우리는 당연히 예약이 된 줄 알고 있었는데 네이버 오류로 오버부킹이 되었다고 밤늦게 연락이 왔다. 식당주인이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문자가 왔기에 아쉽지만 다음기회에 방문하겠노라고 하였다. 잠시 후 식당주인은 괜찮다고 했음에도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미안하다며 커피쿠폰까지 보내주셨다. 왠지 컴퓨터 오류가 식당에 대해 더 큰 신뢰감을 안겨 주는것 같았다.
여행에서 음식을 골라 먹는 것도 커다란 재미이다. 배고파서 아무 음식이나 먹으면 되겠지만 이왕이면 맛나고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도 오랜 추억에 남으리라. 어쩌면 사람들의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그만큼 다양하게 많이 변한 탓일 수도 있다. 맛집이라고 하는 곳은 맛도 있지만 나름 특별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런 곳들은 음식에 대해 진심이고 친절하며 신뢰감을 준다. 우리가 방문한 고깃집도, 예약오류로 가지 못한 식당도 양심적이고 예의가 있었다. 이런 친절한 부분들이 더더욱 사람들을 가고 싶게 하고, 음식을 맛나게 하며 유명세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알게 모르게 느낌으로 전해진다.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쓸모없는 여행은 없는 것 같다. 내 삶의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 낯선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찾게도 된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작지만 소소한 것들에서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100세 시대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두 번째 서른을 손주 덕분에 아쉽지 않게 보냈다. 5에서 6으로 바뀌는 앞자리 숫자가 결코 아쉬운 삶의 대명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힘찬 응원이 되리라. 인생은 60부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