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 아닌 조연

문학회 행사

by 바다나무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리길이다. 눈까풀도 내려앉고 몸도 천근만근이다.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내려앉는다. 하루종일 구두를 신은 탓에 발이 경직되고 물집도 생겼다. 모처럼 정장을 입었더니 소화도 잘 안된다. 혼자 타고 오는 차 안이라 허리끈을 풀고, 신발도 벗은 채 창문을 조금 열고 찬기운을 맞으며 전했다. 새 신발도, 새 옷도 아닌데 이렇게 불편할 수가.


퇴직하면서 많은 옷과 신발들을 처분했다. 나눔을 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많이 했다. 혹여 모를 지인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때 입을 정장을 흰색계통, 검은색 계통 2벌만 남겨두고 모두 정리하였다. 이 있는 구두도 흰색과 검은색 한 켤레 씩만 남겨두었다. 모처럼 그 옷과 신발 나들이시켰다. 그동안 몸이 자유로움에 익숙해진 탓인지 몸에 딱 맞는 정장과 굽이 있는 신발. 틀에 박힌 행사가 편하지만 않았다.


오늘은 이사오기 전 도시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온 문학단체의 행사가 있어 아침부터 분주하게 집을 나섰다. 오전에는 공부하던 평생교육원의 글쓰기 수필반 수업이 종강이고, 오후에는 문학회 출판기념회 및 시상식 행사가 있다. 론 내가 상을 타는 영광을 누리는 건 아니다. 지 진행(사회)을 맡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길이 막힌다. 한 시간 걸리는 길이 30분을 보너스로 더 달라고 한다. 그나마 조금 일찍 나서길 정이지.


올해는 평생교육원 수업에 멀다는 이유로, 여행 간다는 이유로 결석을 많은 한 불량학생이었다. 정이라는 게 무언지 사를 해서 고향지역을 떠났음에도 그 인연을 끊지 못하고 적을 남겨두고 있다. 가끔씩 지도교수님도, 문우들도 거꾸로 안부를 챙겨 주신다. 글은 잘 쓰고 있는 건지?. 아파서 결석한 건 아닌지? 등등. 참으로 부족한 학생에도 넉넉함로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에 그저 고맙고 죄송할 따름이다.늘도 어느 문우님이 내 몫이라 하면서 챙겨놓은 김 한톳을 치없이 받아왔다.


종강식인 오늘 그동안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이 책을 출간하여, 별도의 기념식 없이 수강생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신다고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출판기념회를 준비했을 텐데. 수강생 중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부랴부랴 꼬리를 무는 연락망으로 간략하게나마 출판기념회를 열기로 했다. 플래카드를 만들고, 케이크를 사고, 샴페인을 터뜨리기로. 무엇보다 삶의 뒤안길에서 만나 함께 글을 쓰며 바리스타자격증까지 이 도전했던 Y언니와 S친구가 있었기에 일사천리로 행사 진행할 수 있었다.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는건 행복이다.


다소 초라하고 부족하지만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생각지도 않은 깜짝 이벤트에 교수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났다. 다행히 오후에 문학회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 꽃다발을 준비해 오신 문우분들도 계셨다. 꽃을 받을 대상자가 잠시 바뀌었지만 어떠랴. 시간여유가 있으니 하나 더 다시 준비하면 되지! 이렇게 한마음으로 평생교육원 수필반 수업을 출퍈기념회로 마무리했다. 모두들 갑자기 이루어진 상황들이지만 훈훈함에 즐거워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다시 오후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시간적 여유는 있었으나 케이크를 먹은 터라 잠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바뀌어진 식순에 따라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했다. 감기도 걸리고, 결석도 잦고, 집도 멀어 고사했지만 문학회 회장님의 간곡함으로 부득불 사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해 연말 문학회 행사 진행을 맡았던 것과 스승의 날 사은사를 낭독한 것이 결국 족쇄가 되어 를 가두 놓았다.


전문 MC도 아니고, 지역의 내놓으라 하는 작가분들이 이 오시는 행사라 조심스러웠다.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에도 신경이 쓰였. 참석자분들 중에는 의외로 같은 계통에서 일하셨던 선배님들도 꽤 여러분 계셨다. 무엇보다 직장을 퇴직하며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던 일상이라 부탁을 받은 날부터 담이 되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시간은 지나고 내게는 전날 식순 한 장만이 카톡으로 전졌다.


이미 정해져 는 상황이라 아설 길이 없었다. 수상자의 작가약력도, 시나리오도 모두 작성해야만 했다. 지난해 20년 된 문학회의 연혁지를 며칠간 고생하여 정리했기에 임원진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리라고 믿으시는 것 같았다. 어쩌랴? 이젠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가진 작은 재주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행복"이라고 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응할 수밖에. 늦은 시간까지 전년도 자료를 수정해 가며 식순에 따라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다행히 작은딸이 방송국 아나운서라 시나리오를 한번 읽어보고 몇 군데 문장을 수정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녹음을 해보고 시간을 재는 작업이 남아있다. 행사가 한 시간을 넘으면 지루해지기 때문에 가상시간을 예측해야만 한다. 녹음도중 잘못된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고, 발음이 잘 안 되는 단어들은 유사의미의 단어들로 교체하였다. 문장에 고저장단이 있는 음절들은 습관이 되지 않은 탓인지 악센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나운서들의 안정된 목소리는 오랜 시간 훈련에 의해 습관이 된 것 기에 단시간 내에 그들을 흉내 내는 건 나에게 무리였다.


두 번 정도 녹음을 해보며 연습을 하고 나니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린다. 행사시간은 대충 맞추어 끝날것 같은데 목소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감기기운까지 있어 영 마땅치 않았다. 러나 어쩔 수 없다. 이젠 그냥 되는대로 하는 수밖에. 의전은 역시 경 쓰이는게 많다. 그래도 대부분 연세 많으신 분들이고 사적 모임이라 많은 상황들을 이해해 주셨다. 문득 직장생활 당시 내빈의 선후소개 바뀌는 바람에 측치 못한 민감한 상황이 발생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위가 높은 분들은 의외로 이러한 부분에 예민하다.


어찌 되었든 행사는 순조로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맛난 저녁식사로 이어졌다. 혹여 실수하면 어떻게 애드리브를 해야 할까 고민하고 름의 대안은 사용할 일이 없었다. 난하게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아보니 늘 행사의 주연은 지도교수님과 수상자들이었는데 괜스레 조연인 내 마음만 바빴던 루였다. 행사가 끝난 식사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신다. 뽀대(?) 나게 행사를 치르고 싶으셨던 문학회 회장님이 흡족한 표정으로 어깨를 두드려 주신다. 덕분에 뽀대가 났다고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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