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나를 불렀다.
자~아, 떠나자. 동해바다로!(1)
(동해안여행 1일 차)
바다가 보고 싶었다. 남편이 방학하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퇴직하면 허구한 날 놀텐데 하면서도 마지막 방학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2023년 새해첫날 많은 인파로 인해 제대로 된 해맞이를 못한 것이 마치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인정받지 못한 것인 양 아쉬움이 남았다.
풋풋한 젊은 날 만나 동종 직업으로 근 40년을 살아오며 무수한 성을 쌓고 부수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신화처럼 숨을 쉬는 예쁜 고래 한 마리를 가슴속에 품고 있었기에 대과 없이 예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제 또다시 해 뜨는 동해에서 최고의 희망인 고래사냥을 하면서 그간의 삶을 위로받고 새로운 출발을 고하고 싶었다.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동해로 출발했다. 네비는 3시간이 소요된다고 가리켰다. 그래, 급할 것 없으니 보고, 맛보고, 즐기며 여유 있게 다녀오자.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처럼 다소 들뜬 기분이었다. 한참을 가다가 볼일도 볼 겸 커피가 생각나서 동해휴게소에 들렀다. 바다가 보이는 화장실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들어가 보니 이름 그대로 낭만이었다. 설마 볼일을 보며 바다를 볼 줄이야... 뱃속도, 눈도 시원해졌다. 그런데 벽에 써놓은 문구 또한 명언이었다.(다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편식이 심합니다. 화장지가 아닌 물건을 저에게 주실경우 저는 토하게 됩니다.(중략) 제가 막히면 여러분 인생도 막힙니다."
화장실을 나오며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실실거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내가 사용한 화장실이 안 막혔으니 앞으로의 내 인생도 펑 뚫리겠지'라는 허망한 기대를 하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겨울임에도 차 안에서 느끼는 햇살이 눈이 부셨다. 따뜻한 날씨가 남편과의 여행길을 축복하면서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마음이 급해졌다. 제일 먼저 묵호항 근처에 있는 벽화마을로 알려진 논골담길로 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묵호의 옛이야기와 삶의 애환을 담은 바닷사람들의 생활을 벽에 그림으로 그려 놓은 마을이 있다. 빈곤과 고단함과 비린내가 함께 뒤석인 그 옛날의 삶을 아름다운 채색으로 희망과 따스한 온기로 바꾸어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 대전의 대동하늘공원, 청주의 수암골 벽화마을, 여수의 고소동 벽화마을 등 오지나 산동네에 있는 노후된 집과 담벼락에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지역문화 관광지를 만들어 놓은 곳이 꽤나 여러 군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웠던 우리 부모님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마음 한 자락이 애잔했다.
조심조심 그곳에 생활하고 계시는 분들의 사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 바람의 언덕과 묵호등대를 만났다. 그리고 바다 위를 걷는 아찔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를 걸으면서 나 지신을 바다 위에 둥둥 띄워 보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그래! 예서 마음의 찌꺼기들 다 날려버리고 남은 인생 즐기자! 훠~이, 훠~이~~~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팠다. 조선시대 한양의 경복궁에서 정동 쪽에 자리 잡은 곳이라 하는 정동진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해돋이를 보러 몇 번 와본 곳이라 그냥 눈길로 스캔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할 듯싶었다. 초당 순두부집을 찾았다. 요즘 콜레스테롤이 높아 둘 다 식생활에 브레이크가 걸려있는 터라 가능한 음식은 조금 가려서 먹고 있는 중이다. 만인의 단백질 식사 콩요리로 일단 보이지 않는 병도 치료할 겸 아우성치는 위를 진정시켰다.
배가 부르고 나니 다리도 잠시 쉬고 싶다고 한다. 향기 그윽한 커피가 나를 유혹했다. 천국의 계단이 있는 썬크루즈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데 입장료를 받기에 의아해했더니 나중에 커피값에서 입장료만큼 감해 주었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천국의 계단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 폐쇄하였고 조각공원에는 여러 가지 조형물이 설치되어 바다를 배경 삼아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잠시 산책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조금씩 앉은 의자가 돌아가는 배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다소 모양새는 근사해 보였지만 유일한 내륙도시에서 살다 온터라 남편은 어지럽다고 이내 가자고 한다. 하긴 나도 약간 멀미가 나는 듯했으니 둘 다 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 늦기 전에 온천욕을 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야 할 것 같아 숙소로 갔다. 무게감이 있는 중후함이 느껴지는 온천호텔이다. 대충 짐을 풀고 해수풀이 있는 온천에서 심신의 피로를 녹였다. 한 살씩 나이가 먹어가니 여행코스에 온천이나 마사지가 있는 곳은 필수다. 피곤이 몰려온다. 하루종일 수고한 몸에게 휴식을 선물해 주어야겠다.
오늘은 집 떠나니 좋았다. 내일은 고생일지 몰라도...
(P.S. 쓰다 보니 길어져서 2일 차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