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뷰가 뭐라고.

눈아 참아다오!(2)

by 바다나무

(동해안 여행 2일 차)


알람을 7시에 맞추어 놓았다. 해맞이를 하기 위함이다. 해 뜨는 시간은 7시 50분, 문화재청이 일출명소 1호로 지정한 추암 촛대바위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여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멋진 일출을 찍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아 있었다. 내 눈앞에는 누군가가 띄워놓은 드론이 날갯짓하며 날고 있다. 눈을 수평선 저 끝에 응시하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짙은 어둠을 몰아내고 여명이 밝아온다. 붉은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며 은빛바다를 거부하고 세상 밖으로 순식간에 뛰어오른다. 가히 애국가 1절의 배경화면을 장식할 만하다. 갑자기 저 태양 하나의 힘이 세상을 밝고 어둠으로 양분화한다는 것이 너무 위대해 보여 마음이 숙연해진다. 작은 소망을 빌어본다. 그저 건강하게 지금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발밑에 바다를 두고 건너는 해상 출렁다리를 지나 조각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춥기도 하고 약간 허기도 느졌다. 배꼽시계는 잠도 없나 보다. 점심에 맛집으로 냄비물회 잘하는 집을 검색해 놓은 터라 아침은 간단한 국물 있는 것으로 요기만 하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바다를 보며 컵라면을 먹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실상은 편의점에서 물건만 사보았지 음식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컵라면을 골라 계산을 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편의점 주인은 친절하게 온수물을 부어주고 500원짜리 노란 단무지도 추천하며 이층에 가면 먹는 장소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앞으로는 1인 생활 가능성이 높아져 혼자서 식사하기는 편의점이 안성맞춤이니 자주 이용하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어정쩡한 우리에게 하는 일침이지만 왠지 주인장의 말이 그냥 허투루 들리지는 않다.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망상해수욕장으로 갔다. 이곳은 동해안 제일의 명사십리와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상상 그 이상의 망상 해수욕장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명소였다. 깨끗한 백사장과 해안가의 해송, 그리고 오토캠핑장은 이곳이 유명한 휴양지라는 것을 알려주듯 평일임에도 바닷가를 보러 온 관광객이 꽤 있었다.


바다 위의 기암괴석에 부딪쳐 하얗게 흩어지는 포말들, 거세게 달려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모습은 이내 흔적을 지워 버렸다. 이래서 사람들은 죽을 때 허무감을 느끼며 "인생은 한낱 물거품 같다"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겨울바다는 조용하고 잔잔해서 좋았다. 요동이 없이 그저 평온함을 불러왔다. 어쩌면 그래서 인생은 "가까이만 보지 말고 멀리 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아이러닉 한 게 인생인가 보다.

주변의 해변은 바다모래가 너무 가늘고 고와서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 연인들이 "나 잡아봐라!" 하면서 슬로모션을 취한 것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지훈련을 온 학생들이 해안가를 달리며 축구연습을 하고 있다. 꽤나 체력소모가 클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꿈을 꿀 것이다. 분명 저 중에는 또 다른 손흥민선수도 있겠지?...


이제는 배보다 배꼽이 큰 카페를 가서 낭만을 즐겨야 할 때다. 빼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 아닌가? 오늘도 역시 난 아메리카노. 남편은 라테, 거기에 소금빵을 주문했다. 아, 남편이 컵라면으로 조금 식사가 부실할 듯싶어 샌드위치 하나 추가!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팔짱을 끼고 가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집을 나오면서, 앞으로 퇴직해서 여행을 할 때에는 내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한다고 남편에게 주문했다. 며칠 전 언니들과 여행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고 나서는 나도 내 다리의 근육힘을 믿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아주 부실하지는 않다. 다소 약할 뿐이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절대로 "빨리"라는 말로 재촉하지 말라고 하였다. 기억력이 감퇴되어 가스밸브 확인하러 다시 올라가야 하니까 그만큼 시간만 더 연장된다고...

생각해 보니 억지 아닌 억지요. 협박 아닌 협박이다. 그런데 어쩌랴? 내 몸이 그리 말하는 걸...

이렇게 앞으로의 인생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타협점을 찾아간다.


행복한 섬길인 한섬해변으로 이동했다. 산책길을 끼고돌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입구에 있는 기하학적 조형물 터널은 저녁에는 음악과 함께 조명이 들어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리드미컬 게이트이다. 그래서 이 해변을 "한섬감성바닷길"이라고도 부른다.


기찻길이 가까이 있는 천곡항에는 언젠가 피피섬에서 보았던 제임스 본드섬을 추억하게 하는 하대암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몽돌해변도 나오고 호랑이형상을 한 바위와 어린 왕자가 앉아있는 우물도 있다. 포토존인가 보다. 바다, 구름, 배, 모두가 환상이다.


사진기사가(남편) 인생샷을 만들어 준다. 열심히 주름진 얼굴이라도 곱게 찍어주려고 각도를 맞춘다. 이런 남편에게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우리 오래오래 이렇게 함께 다니자!'라고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마 남편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혼잣말이었으니까!) 내 마음속 오디오에 저장해 두었으니까 먼 훗날 더 흰머리 흩날리는 햇살고운 어느 날 재생시켜야지...


입은 간간히 즐거움을 주었는데 오늘도 다리가 고생을 많이 했다. 양양 낙산사 쪽에 숙소를 정했기에 일단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바다뷰라고 하기에 호텔키를 받아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문을 연 순간 매캐하고 진한 향기가 엄습했다. 이거 뭐지? 하며 일단 문을 열고 공기를 환기시켰다. 뷰는 좋지만 방향제를 너무 많이 뿌린 탓인지 호흡이 불편했다.


당초 1박을 예정했다가 간 김에 하루 더 여행하고 오자고 말한 내가 화근이었다. 갑자기 인터넷 사이트에서 댓글을 보고 숙소를 잡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비용은 지불할 만큼 지불했음에도 사실과 후기가 달랐음을 우리가 어쩌겠는가? 단지 바다뷰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니 누굴 탓하랴.


어쩔까 하다 일단 문을 열어놓고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그동안이면 환기가 될 듯도 싶었다. 생대구매운탕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거꾸로 강을 거슬러 간다는 연어가 있는 남대천으로 야경을 보러 갔다. 뭔가 1프로 부족한 야경이라 솔비치의 베누스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국적인 향기가 나는 고급호텔이 마치 공주가 사는 성처럼 둘러싸인 채 광장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솔비치 해변까지 불빛이 환하게 비추어 파도소리 들으며 산책하기도 좋았다. 예까지 왔으니 카페에서 차 한잔은 마시고 가야 할 듯싶었다. 호텔에 들어서니 갑자기 빈부의 격차가 느껴지는 듯했다. 조금 전 우리 숙소가 떠오른 탓이리라. 어쩔 수 없다. 이 기분을 만회하려면 다음에 준이를(손자) 데리고 다시 오는 수밖에. 씁쓸한 마음으로 예약해 둔 숙소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지독한 향기는 사라졌는데 썰렁하니 왠지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가뜩이나 마뜩잖아했는데 고급호텔에서 놀고 오니 단 하룻밤이라도 잠이 올리 만무하다.

우린 어쭙잖게 서 있다가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약속이나 한 듯이 짐을 챙겼다. 어차피 잠만 자고 낼아침 손주를 보러 일찍 나설 계획이었으니 이 밤에 출발한 들 어떠랴. 할아버지 좋아하는 손주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났을 때 짠! 하고 나타나 서프라이즈나 해주어야겠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하얀 꽃이 날리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이 꽃이 반갑지 않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못한 탓이다. 제발 손주한테 갈 때까지 눈아 참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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